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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집에 돌아오니

by 자 작 나 무 2005. 8. 1.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슬픈 일도 없는데 괜히 울적하고 슬프지도 않은데 가라앉는다.

"엄마, 여행 재밌었어....."

 

밀폐되어 있던 방 안 공기를 환기하고 걸레질을 하고 누울 자리를 펴는데 아이가 싱긋 웃으며 건넨 말이었다. 가까운 고성에서 당항포 대첩 축제가 있었다. 축제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 기간만은 입장료가 무료인 데다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하여 나선 걸음에 이것저것 보고 놀다가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은 진주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더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대로 한 시간가량 기차를 탈 수 있고, 돌아오는 직행버스가 있는 도시를 골라 기차를 타러 나섰다가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덥고 지친 걸음이었어도 방 안에 있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것을 느끼고 내 생각들도 허튼 감정에 지쳐 울고 싶었던 그 기분을 겨우 벗어낼 수 있었다.

 

늘 손에 꼭 쥐고 다니던 전화기를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고 다녔다. 아무리 손에 꼭 쥐고 있어도 전화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미련한 나도 알 때가 되었다. 사진 정리는 내일하고 프란체스카 마지막 회나 봐야겠다. 프란체스카가 끝났다. 마지막 회여서인지 아주 섭섭했다. 잠은 오지 않고 배고프다.

 

여태 비 오는 곳을 시간별로 잘 피해 다녔는데 지금 창밖엔 마당으로 내리는 빗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시원하다. 마음 끝에 뭔가 지니고 있던 얄팍한 욕심 한 조각을 내려놓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을까. 며칠 내내 입에 달고 먹던 던킨도너츠.....

 

괜히 허전해지니 생각이 난다. 몇 개 사 들고 왔더라면 일없이 또 먹게 되었을 텐데 배가 고파서 허전한 것인지 마음이 허전해서 속이 허한 것인지 빗소리가 텅 빈 가슴을 비질하듯 쓸고 간다.

 

밖에선 아이 지키랴 더위에 익지 않으려 의식을 반쯤 풀어놓은 상태로 다니느라 외롭다는 생각에 빠질 틈도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하필 이 의자에 앉으니 예약되어 있던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재생되듯 외롭다는 생각, 허기에 짓눌린다.

 

화가 난다. 매번 그렇게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며 실컷 웃다 돌아왔는데 돌아와선 지친 모습에 마음엔 또 여전한 그늘이 남아 있다는 것이 못 견디게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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