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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시월의 바람

by 자 작 나 무 2023. 10. 19.

2023년 10월 19일

시월의 바람이 흩어 놓은 구름마저 근사하다. 노랗게 익은 벼를 미는 콤바인이 빨갛게 눈에 띈다. 어제 겨우 몇 달 만에 나와서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보며 감탄했다. 첫눈에 이런 풍경이 어쩐지 좋아서 며칠은 꼭 나와서 잘 여문 벼로 꽉 찬 논을 보며 가을을 느끼고 싶었는데 벌써 절기가 이렇게 가을 한가운데 왔나 보다.

 

둑방길 따라 걷다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일행은 앞서 가고 여유 없는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걷던 걸음이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니 짧은 휴식은 끝났다. 물가에 노는 새가 푸드덕 작은 저수지 위를 그림자 드리며 얕게 날아서 지나가니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림자에 화드득 놀라서 파닥파닥 물 위로 튀어 오른다.

 

그림자만으로 느낀 거다. 한순간 끝나게 될지도 모를 위기에 직면한 물고기의 생존 본능이 바닥으로 숨어들지 않고 오히려 물 위로 튀어 오르게 하는 거다. 생존을 위한 숨 가쁜 몸부림과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새의 전투력이 한눈에 펼쳐진다. 저렇게 삶의 본능은 첨예하게 작동한다.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라는데, 그래서 저 광경조차 아름답다며 보고 선 나는 원하지 않아도 숨이 쉬어지고 먹으면 알아서 소화하고 속에 쌓이면 배출되는 이 몸에 실려서 뭘 더 발견하고 싶은 걸까.

 

 

*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산책 한 번 나와보지 못하고 일에 쫓기고 속이 문드러지도록 사람이 변한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인연을 정리하게 하는 것이 순리였던가 싶다.

 

고향에 살다가 잠시 20대 중반에 옮겨와서 오랜 인연이 해체된 곳이기도 하고, 길지도 않았던 이 생태계에서 벗어나려고 결심하고 돌아서기로 결심하게 된 곳이 이 동네다. 인연이 흩어져서 다했음을 이곳에 와서야 확신하게 된다.

 

 

내 나이 스물 넷이었던가, 스물다섯이었던가..... 이 좁은 동네에서 처음 피씨 통신을 시작해서 여태 온라인에서 살았다. 밖에서 사람 만날 일이 없었다. 

 

평소와 달리 집으로 곧장 좌회전해서 꺽지 않고 직진했다가 유턴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길모퉁이에 '잉어빵' 리어카가 있다. 집에 들어가서 힘들어서 누웠다가 지폐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두 마리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천 원짜리 한 장 내밀기 미안해서 네 마리 사서 길에서 다 먹고 말았다.

 

 

붕어빵 사려고 나왔다가 속이 더부룩해져서 운동장 몇 바퀴 돌았다.

 

아직 전력질주하거나 힘껏 뛸 수 있는 상태는 아니란 것은 확인했다. 걸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큼 그간 걸을 때마다 느낀 무릎과 허리, 어깨까지 이어진 통증이 암담했다. 이제 걸을 수 있을 때마다 걸어야겠다. 설령 작심 삼일로 끝나더라도 사흘은 걷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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