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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모서리

by 자 작 나 무 2023. 10. 19.

준비가 충분하진 않았다. 그래도 떨리는 마음으로 한마디 한마디 하면서 뭔가 전달되는 것 같은 착각에 붕 떠서 희열감을 느꼈다. 난 이런 일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걸 잘하는구나...... 나를 힘들게 한 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잡무+잡무, 인간에 대한 예의 없는 이들이 마구 던지는 말에 종종 심장이 울렁거리고 역정이 솟아 올라서 내가 살아있다는 게 너무 잔인하게 시린 현실처럼 느껴지는 점이었다.

 

 

*

뭔가 발견한 듯 회차로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마음을 내지 못하는 날 선 감정이 부드럽게 조율되지 않는 나의 모서리. 마저 다듬어져야 끝날 일인 모양이다. 사랑이거나 자비이거나 어떤 이름으로든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와 많이 다른 딸에게 역정 한 번 내지 않고 식성부터 갖가지 다 맞춰주며 큰소리 내지 않고 살았던 것도 지향하는 바가 진정한 소통과 화합이었던 까닭이다.

 

길게 보면 어느 지점에서든 크게 감정 다툼을 하면 골이 생겨서 나이 들어도 잘 메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몹시 조심했다. 자식에게는 응당 져주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를 쓰고 찍어누르는 이도 있다. 넘치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감정을 조율하는 훈련을 하기에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 만큼 유용한 일이 또 있을까.

 

나와 결이 조금 다르고,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뾰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시선을 돌리거나 무거운 음성으로 상처낼 말을 꺼내려 했던 나를 보았다. 이번에 꼭 다듬고 싶었던 게 이거였구나 싶다. 참고 넘어가거나, 그런 척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는 확연히 넓은 마당에서 사방으로 뚫린 시선으로 세상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일 각오를 다시 해야 하는 거다.

 

바뀌지 않을 것이 싫다고 나도 꼰대처럼 굴 필요는 없으니까. 이 언덕을 넘지 못하면 앞으로도 조금 생각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고, 매번 갈림길에서 피할 방법만 찾을 테니까. 굳이 나서서 그런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내 마음이 좁아서 사람을 피하기만 한다면 어떤 상황이거나 선택지는 거의 정한 답 외엔 없다.

 

오늘은 이 정도면 한껏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으니 일찍 잠들어야겠다. 내 몸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일을 하면서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 내 상태에 따라서 늘 그만큼의 일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한데 더 하라고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 오늘 온전히 내 편이 되어 보기로 한다. 그만 쉬자.......... 이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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