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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ㄹㄹㄹㄹ

by 자 작 나 무 2023. 11. 23.

지난 화요일에 지인이 추천한 모임에 가서 편안한 자리에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라는 주문을 받았다. 내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불 꺼지지 않은 정전 상태였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거나, 너무 편안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원하는 것을 고르라는 10가지 선택지 중에 딱히 고르고 싶은 게 없었다. 주어지는 대로 살아낼 각오를 한 덕분인지 진심으로 원하는 것 리스트에 흔한 그 욕망이 겹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우울한 상태 거나, 그만큼 욕망이 없는 상태인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설렌다. 내일 딸과 함께 떠날 2박 3일 여행이 시작될 내일이 꼭 어릴 때 소풍 전날 그랬던 것처럼 설렌다.

 

최근엔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읽으면서 설레고 감사했다. 꼭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었던 사실을 책 읽던 중에 점검하고 확인하며 내 비뚤어진 매무새를 고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세속에 인간이 만든 법이나 규칙이야 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쳐다보기도 싫어했는데 그 속에서 삶을 나누고 있는 내가 결코 등돌리거나 저버릴 수 없는 현실이란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묶이거나 갇히지 않고도 그럴 수 있는데 하기 싫었을 뿐이라고 변명해본다.

 

찬란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처럼 세상이 금세 멸망할 것 같은 불투명한 대기 상태로 하늘이 가려져도 우주 그 자체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표현하던 그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이 진짜인 듯 착각하고 싶어 했다. 지독한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도 그 너머의 진실을 늘 자각하기를 바랐다. 왜 이런 삶을 반복하는지 궁금했다. 

 

지식과 앎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한낱 도구이니 그날로 던져버리고 쳐다보지 않아도 살아질 줄 알았다. 물론 그러하지만 그러하지 않다. 내가 나에게 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내 일기는 대부분 그렇다. 소통하는 넓은 언어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잠시 설렌다. 길을 떠나는 것에 설레고, 고여있던 내 머릿속에 가라앉은 먼지를 확 뒤집어서 털어내는 순간에 설렌다. 먼지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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