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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12. 01

by 자 작 나 무 2024. 12. 1.

2024-12-01

 

심심할 때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면 세계 각국에 사는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깃거리 볼거리로 넘쳐난다. 새 메뉴 레시피를 얻기도 하고, 반복해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유행하는 노래를 알게 되기도 하고, 반려동물이나 아이를 찍은 게시물을 자주 접하게 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굳이 검색하지 않고 랜덤으로 나오는 걸 그냥 보는 편이다. 얼굴 마사지 하는 방법이 떠서 괜찮아 보이면 따라 해 보고, 신나는 노래에 맞춰서 춤추는 영상이 나오면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즐기며 찍어 올린 영상을 보며 나도 즐긴다.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뜨면 바로 넘기고, 한 번쯤 가볼 만한 새로운 장소에 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봄엔 꽈리고추김치 레시피를 유용하게 몇 번 써먹었고, 최근엔 맛없는 사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게 돼서 집에서 뒹굴던 맛없는 사과를 말끔하게 다 먹어치웠다.

 

인스타에서 본 레시피를 참고해서 그릭요구르트에 땅콩버터를 섞어서 꿀 좀 첨가해서 접시에 깔고, 먹기 좋게 썰은 사과와 다른 채소를 곁들인 뒤에 올리브 오일 한 바퀴 둘러주고 후추 조금 뿌려서 먹었다. 처음엔 낯선 맛에 눈썹이 한 번 올라갔지만, 묘하게 자꾸 떠올라서 집에 있는 그릭요구르트와 땅콩버터를 소진할 겸 종종 맹맹한 과일과 채소를 먹어치우는 데에 그 레시피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

 

 

*

일요일에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 잠정적인 약속 때문에 이번 주말에 통영에 가려던 계획을 다음 언젠가로 미뤘다. 마침 내가 해야 할 일까지 겹겹이 겹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텅 빈 주말을 맞게 됐다. 각자 다른 메뉴로 다른 시간대에 식사를 해결하고 식탁에서 딸이 밥 먹는 동안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있었다. 

 

운전학원 알아보고 다니기로 했는데, 목돈 나가는 게 신경 쓰여서 학원을 알아보지도 않고 심퉁한 표정으로 딸이 제 방에 들어가 버린다. 최근 들어서 몇 번은 하지 않던 돈 이야기를 좀 했더니 의욕이 여러모로 꺾인 모양이다. 현실 감각 없이 아무것이나 요구하던 철없던 때와 다르게 이제 눈치를 보는 것인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원하는 대로 얼추 다 해주며 살기 시작한 뒤로 모아둔 푼돈도 다 흩어지고 보니 조금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뜻으로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 달리 돈 쓰는 데가 없음에도 내가 한마디 한 것의 효과가 과했던 모양이다. 여태 그런 내색 않고 더 힘들 때도 꿋꿋하게 잘 지냈는데 이번 겨울은 내가 굳이 일하지 않고 쉬고 있으니 벌이 없이 쓰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한두 번 말한 게 역효과가 난다. 딸의 타고난 기질은 여행도 가까운데 애매하게 가는 것보다 아주 대놓고 유럽이나 가야 여행 간다고 할 만큼 욕심도 포부도 남달리 큰 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만 아니었다면 그런 딸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사려고 애썼을 테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쩌면 이럴 때 아니면 안 된다고 파리에서 보내는 겨울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대놓고 요구하지 않는 데도 그렇게 해줘야만 행복해할 것 같은 딸의 바람을 읽고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늘 뭔가 더 해주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 덕분에 더 열심히 살았으니 여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젠 꼭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우리가 함께 쉬어서 시간이 날 때에만 가능한 재밌는 일 혹은 꼭 해야 할 일을 찾아야겠다. 앞으론 이런 시기에 둘 다 바빠서 뭐든 할 수 없는 시간이 곧 다가올 텐데 왜 둘 다 우두커니 멈춰 있을까......

 

지난주에 변호사가 고소장을 관할경찰서에 접수해 준다고 했는데 말이 없다. 이 절차가 빨리 진행되어야 떼인 돈도 받고, 숨도 좀 돌릴 텐데. 이 일이 올해가 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 중에 가장 무거운 일인 모양이다. 우리가 이렇게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정 상태였는데 이게 문제다.

 

우량 기업 주식에 투자했어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홀랑 녹아내린 내 주식 계좌도 한 몫했다. 아~우~짜*

딸이 내가 준 용돈 모아서 국내, 해외 주식을 좀 샀던 모양인데, 그게 국내장은 물론이요 해외장도 트럼트 당선 전후로 뭔가 꼬인 것 같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거기에다 넣은 바람에 마이너스 계좌를 갖게 된 딸이 지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표정으로 제 방에 틀어박혀서 밖에 나오지도 않고 요즘은 열심히 게임만 한다. 그래.... 이럴 때도 있는 거지. 그렇지. 흠....

 

그래도 조금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다. 제 주머니도 없는데 엄마 주머니가 가볍다니까 마음대로 뭐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오그라든 거겠지. 마침 교육청에서 한 달짜리 알바 자리를 주선해줬는데 그 학교 교장이 다른 경로로 사람을 알아봤다고 취소 전화를 받아서 그때부터 확실히 풀이 죽었다. 이건 해결 방법이 확실하다. 

 

어차피 다음 학기까진 일을 못할 것이 확실하고, 석 달은 지출을 최소화하고 적은 돈으로 기분 좋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아서 겨울 잘 나면 된다. 기준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사이에 머리 녹슬지 않게 적당히 책도 읽고 관련된 공부도 좀 하면서 여유롭게 올겨울을 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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