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05. 7. 28. 10:29

 

어제 몇 달 만에 그 여자(W)의 홈피에 들어갔었다. W는 늘 흐린 하늘빛이다. 그 너머 더 위엔 맑은 하늘이 보이겠지만 뭔가로 항상 뒤덮여 있다. 안개처럼 보이지 않는 막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다. W는 독특하고 워낙 세련된 사람이다. 그런데 축축하고 슬픈 빛이다.

 

W의 음악 방에 들어가면 밤을 새우게 된다. 이야기하게 되고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사람들을 잡아끈다. 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늦게까지 깨어있는 게 너무 피곤하므로 아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안부 인사도 건네본 지가 사뭇 오래되었다.

 

그래도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홈피에 들어가 보았더니 W의 필력은 여전하고 그 묘한 분위기도 여전하다. 어쩌면 저리도 박식하고 많이 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독서량은 방대하고 생각은 갈래는 다르지만 깊고 오묘하다. 그런 사람이 늘 슬퍼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이웃에 있으면 참 많은 이야기가 가능할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녀의 술친구가 되기엔 내가 주량 미달이지만 그래도 안주 집어 먹으며 말동무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W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늘 외로워하고 마음에 그늘이 보인다. 나도 어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비쳤을지도 모른다.

 

나와 W가 다른 점이 있다면 W는 베일을 두른 짙은 허무를 지녔고 내가 지닌 우울은 허무를 깊이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미를 두고 찾고 따지자면 허망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게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그 생각 뒤집기를 그럭저럭하며 살아가기에 W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덜 우울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한때 W의 음악 방에 단골로 오던 객 중에 나와 이야기를 하던 사람을 사이에 두고 있지도 않은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W가 좋아하던 남자가 나와 친한 것이 눈엣가시 같았던 모양이다. 함께 식사할 기회가 생겼는데 나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그날 저녁 영문도 모르는 내게 심리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을 보고 W의 마음이 얼마나 허술하고 여린 사람인지를 알았다.

 

그렇게 한동안 뜸했다. 나는 이유 없이 오해를 받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탐내고 마음에 둔 남자와 굳이 가까이 있어서 눈에 가시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음악 방에서 친해진 많은 사람과 그렇게 인연이 끊어졌다.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W의 질투는 여전할 것이지만 내가 W가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음으로 내게 다시 처음처럼 우호적인 태도로 바뀐 것을 보고 피익 웃음이 났다. 비슷한 경험을 더러 한 적이 있다. W가 아니더라도 자기와 친한 사람과 내가 친해지는 것을 경계하거나 아예 얼씬도 못 하게 하려는 강한 경계심과 질투심을 가진 사람들을 더러 겪어본 적이 있다.

 

그 이후 나도 혹시 그러진 않을까 하여 조심스럽다. 나도 그만큼 질투심이 강하지 않고 경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으니깐.....

 

한때 내가 즐겨 찾아가는 블로그에 친절한 답글이 오가는 것을 보고 무척 속상해한 적도 있었고, 그녀들의 블로그를 보고 질투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블로그의 속성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모두 그러려니 하지만 '그'의 블로그에 여자들과 친하게 주고받는 답글을 보는 게 속상해서 블로그에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공격적으로 상대를 찾아서 쏘아붙일 정도로 적극적인 질투를 하진 않았지만 나도 그런 기분이 든 적이 있었으니 누군가의 질투도 정도는 다르지만, 이해해야 할 일이지 싶다.

 

이제 W는 나를 질투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를 질투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마음속에 있을 '그녀'는 여전히 부럽다. 차마 질투조차 할 수 없이 늘 뒤로 물러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내가 우습지만,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보단 사는 게 덜 퍽퍽하니 한동안이라도 이렇게 우습고 바보 같은 생각에 젖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