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15. 12. 1. 11:33

2003. 09.06

 

고 1 때 집 근처 불교회관에서 어떤 스님께 처음 다도를 배웠다. 동안거 기간 잠시 머물러 계시던 그곳에 자주 들락거리며 풀 내 나는 녹차를 인상 써가며 억지로 석 잔씩 받아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처음을 시작으로 차츰 그 맛에 익숙해지고 풀 내 나고 무맛처럼 느껴지던 녹차의 향과 맛에 익숙해질 무렵 스님은 동안거 해제가 되어 불교회관을 떠나셨다. 나는 어느 결에 정든 녹차와 그 스님의 배려를 한참을 못 잊어했다.

 

만화책을 수십 권 시리즈대로 빌려다 놓고 무협 만화를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셨다. 참 엉뚱하셨지만 재밌었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 깊은 정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셨던 분이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난 녹차에 길들지도 못했을 테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야 찻그릇을 제대로 갖춰놓고 차를 마시게 되었다. 물을 끓이고 식히는 동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목구멍으로 한 모금의 차를 넘기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약간의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탓에 내게 부족한 인내까지 배우게 되었다. 지금은 입에 맞는 좋은 녹차가 제법 비싼 까닭에 엄두를 낼 수가 없어서 어느새 커피에 입맛이 다시금 길들었지만 녹차는 여전히 내게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