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가배량성
시간 날 때마다 그동안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내가 사는 지역 주변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내가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어서 함께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친구와 시간이 맞을 때만 가끔 나서기로 했다. 그날 찾아간 곳은 거제 가배량성.
특별한 정보없이 어떤 곳인지 가보자 하여 간 곳이었다. 가배량성은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에 있는 도지정 기념물이다. 주변 바다를 경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랫 마을에 작은 해수욕장이 있어서 화장실을 찾아 그곳으로 이동했다.
철 지난 해수욕장, 조용하니 좋다. 육지에서 연결된 저 관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좀더 이 작은 해수욕장에 대한 기억이 좋았을 것이다.
마침 따뜻한 햇빛이 비쳐서 더 편안해 보이는 바닷가를 천천히 걷다 왔다. 바람결이 새겨진 모래가 그림 같은 이 해수욕장은 단순히 철 지난 해수욕장이란 느낌 보단 더 쇠락한 곳이란 느낌이 더 강했다.
어릴 때 살던 바닷가의 옛집은 이렇게 담쟁이로 가득한 담이 있었다. 봄여름 한껏 푸르게 온 담을 감싸고 잎을 반짝이던 담쟁이가 가을이면 저렇게 알록달록한 붉은 빛으로 단풍도 들어서 그 낡은 담을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해줬다. 겨울에 잎 진 뒤 앙상한 줄기들이 보이기 전까진 무척 아름답다.
산, 바다, 하늘로 이어진 곡선들이 내 눈엔 음악 같다. 언제든 이런 풍경들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볼 수 있는 이 곳을 언젠가 떠나게 되면 무척 아쉽고 그리울 것이다. 딸이 벌써 고2가 되었으니 홀로 객지로 딸을 떠나보낼 것이 아닌 바에 나도 고향을 떠나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 전에 기회가 닿는 대로 통영, 고성, 거제의 곳곳을 더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다. 유배지 같아 쓸쓸하게 보이던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과 건물들로 북적북적한 도시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그런 복잡한 곳은 잠시 다녀오는 곳으로 충분하다.
저곳에서 제법 딱딱해진 모래를 밟고 물가를 거닐던 느낌이 떠오른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내게 그렇게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계속 기록하고, 기억하게 된다. 그 순간 흩어져버린 바람도 햇빛도 내 어설픈 사진 속에 담겨서 다시 재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