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집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왔더니 바닷가에 뜬 달이 건물 사이로 빼곡 고개를 내민다. 조금 더 서둘러 걸었어야 했다.
통영 국제 음악당 블랙박스 공연장 위에 달이 걸렸다.
더 하늘 높이 달이 오르기 전에 바다에 비친 광경을 보고 싶어서 여기서부터 뛰어갔다.
금빛 달, 금빛 물결, 그대가 그리워서 숨 가쁘게 뛰었다.
걷다 보니 달빛이 창백해지고, 기분도 푸르뎅뎅해지고, 찬바람에 목덜미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스카프를 가져왔는데 꺼내지 않고 바람을 맞고 있었다. 달빛에 홀려서 바람이 차가운지도 몰랐다.
이대로 걷다가 어디서 폭 고꾸라질 것 같은데 마침 딸내미가 동기랑 과제 끝내고 콩나물 국밥집 간다고 톡을 보냈다. 아득하게 정신이 나갔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혼잣말하다가 들켰는데 내 뒤에서 걷던 아주머니 한 분이 누가 민 것처럼 헛걸음질 하다 넘어졌다. 민망한지 얼른 제자리를 찾으신다. 나도 얼른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아서 잡념 망상을 툭툭 먼지처럼 털어냈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혼자 오래 있으면 서글퍼진다. 곁에 누군가 있어 준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외로움이 찬바람처럼 목덜미에서 시작해서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옷을 더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겠다. 감기약에 취한 것처럼 감정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곧 괜찮아질 텐데 또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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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의 노래는 대학 1학년 때 하숙집에서 자주 듣던 곡이다. 노래 듣다가 시간을 거슬러 감정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잠시 기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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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나를 관광지의 랜드마크 정도로 생각한다. 서너 시간 거리가 천국과 지옥의 거리 정도 되는 것으로 만든다. 딱 한 번 통영에 와서 랜드마크 하나를 확인하고 돌아간다. 한 번만 보고 가는 먼 나라 관광지. 저 길을 단 한 번도 끝까지 누군가와 걸어본 적이 없다. 으레 사람들이 그런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