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반 두려움 반
원체 순하고 여린 성격이었는데 내 성향을 알고 나면 함부로 굴거나 우습게 보고 피곤하게 구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금전적 사기도 거리낌 없이 친다는 거다. 꽤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렇다고 모나고 뾰족한 사람이 되면 그런 일을 겪은 것으로 얻은 결과 중에 나에게 가장 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변했다. 이렇게 변한 내 모습에 딸이 말한다. 이제 정상이라고. 이전의 그런 태도는 바보에 속한다고.
가끔 이런 나를 직면하며 놀란다. 왜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인가. 왜 이렇게 까칠하고 두려워하는가. 그만큼 내가 약해졌다는 거다. 이제 더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고 힘든 것을 견디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애초에 방어막을 치고 그 누구와도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지 않는 거다.
내면은 그렇지 않은데 타인이 보기엔 충분히 오해할 만큼 나는 딱딱하고 까칠해 보인다.
전에 서울 갔을 때 코스트코 매장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베르껭 사탕을 미리 주문하고, 곁들일 초코바를 사서 서른 개 포장했다. 이런 것을 언제 해봤던가? 아주 오래전에 집에서 빵이나 과자를 만들 때 가끔 포장지 사서 내가 만든 빵이나 쿠키를 포장해서 지인에게 주기도 했던 기억이 있고, 그 외엔 이런 일은 여고생이었을 때나 했던 일이다.
포장한 사탕을 올해 나와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여고생들에게 하나씩 줬다.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의 변화에 위축되고 얼어붙고 일에 쫓겨서 마스크 너머로 전달할 수 없는 표정 너머에 있는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정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주 들여다보고 간혹 잔소리 같이 들리는 당부를 하는 것도 결국 관심의 표현이다. 그 관심이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