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첫날, 대릉원
10월 2일
난 이 여행을 정말 가고 싶었을까? 연휴 시작부터 집에서 한숨만 쉬는 게 단지 싫었을 뿐.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각에 깨어 긴 머리를 감고 말리느라 시간을 보냈다. 출근할 땐 못해도 이런 날은 해야지~ 다이슨 헤어롤로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안 해도 되는 절차를 거친다.
어젯밤에 다 못 듣고 잠든 다스뵈이다를 켜놓고 꼼지락거리다가 냉장고에서 시들고 있을 샤인 머스켓 한 송이가 떠올랐다. 곧 나가야 할 시각인데 늦게 과일을 씻고 화장을 한다. 마스크 쓴 내 얼굴 누가 본다고…...
살쪄서 맞는 옷이 없어서 옷을 고르다가 시간 지체…. 뻔히 알면서 일부러 늑장을 부린다. 여행은 좋지만 혼자 가는 게 여전히 마뜩잖다. 버스 놓치면 그 핑계로 집에서 놀아야지~ 현실감 없이 이런 짓을 한다. 예매한 표만 아니었으면 택시비 만 원 안 날려도 되는데..…. 취소 수수료가 더 싼데.
시외버스터미널에 40분 정각에 도착 홈에서 버스는 떠났다. 시외버스가 신호 받는 길에서 막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어림도 없는 짓을 해서 경주 가는 버스에 앉았다. 통영에서 경주 가는 버스는 거제를 거쳐 거가대교를 지난다. 버스에 타기 전까지 빠듯한 시간 흥분 최고조에 심박 수가 급격히 오르는 묘한 긴장감과 전율을 맛봤다.
역시 혼자 떠나는 여행엔 혼자 벌이는 엉뚱한 늑장 부리기 이벤트라도 있어야 이만큼 신이 나는 거지. 경주 들어가는 길이 밀리면 적어도 3시간은 버스 안에서 버텨야 할 텐데…... 물 마시면 일 나겠지?
황리단길은 초입부터 젊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대릉원 가는 길에 슬쩍 스쳐가는 정도 외엔 혼자 그 길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가족, 커플..... 다 부럽다.
대릉원 왼쪽 담장 길을 흘낏흘낏 담 너머로 훑어가며 걷는다.
대릉원 입장권을 사고 발열 체크한 다음에 입장
오래된 큰 나무 많은 곳이 좋다.
서둘러 갈 필요 없으니 나무 그늘 따라 슬슬 걸으며 이런 정취를 즐긴다. 동행이 없으니 어떤 속도로 걸어도, 어디에 멈춰 서도 걸릴 것이 없어서 좋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낮기온이 높아서 조금 걸으니 덥다. 나무 의자에 앉아서 하늘 한 번 보고
시야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는 무엇 때문인지 유명한 사진 촬영 장소인 모양이다.
저기서 사진 찍겠다고 젊은 커플이 줄을 한참 섰다.
혼자 여기저기 걷고 실컷 사진 찍다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