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 16년
16년 전에 사고 나서 폐차하고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처음 운전한 거였다. 그 사이엔 친구들이 다 차가 있으니 한 번씩 만나서 같이 놀면 내가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폐차할 정도로 심각한 사고를 낸 뒤에 그때 다친 머리 부위가 가끔 아파서(일종의 환상통이었지만) 차를 사는 게 끔찍하게 무서웠다.
너무나 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혹은 그때처럼 미친 듯이 혼자 밤길에 과속하며 세상이 끝날 것처럼 달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충분히 사그라들 때가 넘고 또 넘었는데도 차를 사지 못한 것은 혹시 딸이 수도권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어림도 없는 푼돈이지만 보태서 함께 살 방이라도 구해보려고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할 수 없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 돈으로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한두 가지 해본다. 집을 떠나서 처음 다른 곳에 방을 얻어서 혼자 살아보고, 혼자 낯선 도시 여행도 하고, 혼자 더 자유롭게 다니고 싶어서 차도 샀다.
전에 항상 즐거웠던 남해 여행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이던 딸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기를 바란다. 주말에 하동, 섬진강, 구례에도 훌쩍 다녀올 수 있겠고, 함양 상림에 연꽃 보러 가는 주말도 맞을 수 있고, 올해 학교를 떠나기로 하셨다는 남 선생님 뵈러 산청에도 한 번 다녀올 수 있겠다.
여행보다는 그간 발이 묶여서 가볍지 못했던 걸음, 조금은 편하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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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친구가 초보운전 스티커를 택배로 보내줬다. 오늘 그 스티커를 들고 갔다가 마침 어제 첫 주행에 이미 한참 더러워진 차를 좀 닦고 이왕에 차 문 연 김에 혼자 살짝 동네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무 데나 쏘다니다가 집에 돌아와서 옆차가 없는 공간에 주차했다.
옆에 차가 있어도 다른 차를 긁지 않고 주차할 실력이 될 때까지는 차를 타면 계속 긴장할 것 같다. 피곤한데도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주말이면 지칠 것 같다.
딸을 태우고 토요일엔 통영 집에 가기로 했다. 일곱 살에 태우고 다니던 차를 폐차한 뒤에 내가 운전하는 차는 처음 타는 날이다. 남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은 우리는 참 어렵게 하고, 남은 어렵게 하는 일은 우리는 참 쉽게 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