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22. 6. 19. 13:19

이 좌표에 그대로 갇힌 듯한 압박감이 있었다. 철저하게 통제된 완행 혹은 직행버스 시간표를 숙지하고 환승하기를 반복하여야 어디든 나설 수 있는 곳. 시내버스라고 하기엔 배차 간격이 너무나 길고 노선도 정리하기엔 복잡해서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석 달 열흘 견디고 차를 샀다. 십수 년 지나는 동안 절대적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사지 않던 차를 샀다. 며칠 동안 퇴근하고 저녁마다 매일 일없이 차를 타고 다녔다. 어제 점심때 나가서 해질 때까지 여기저기 좌표 찍어서 돌아다니다가 와서야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매번 주말에 눈 뜨면 허전해서 뭘 먹어서 허전함을 채울까 궁리할 때가 허다했다. 오늘은 단순한 배고픔 이상의 허기에 시달리지 않았다. 별것 없지만 집에 있는 것 챙겨서 끼니를 넘겼다. 그럴 수 있는데도 여태 그러지 못했다. 마음이 끝 간 데 없이 굶주린 야수처럼 뭐든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내 발이 아니라 자동차 바퀴만 굴러가면 어디든 가는 거다. 가끔 보고 싶었던 거제 소병대도 전망대에 앉아서 멍때리기도 할 수 있고 삼천포항에서 밤배 타고 제주도에 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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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방학한 딸은 학교 기숙사에 남기로 했다. 오늘부터 방학이라는데 내게 올여름 방학은 5일뿐이다. 앞으로 두 달 안에 이번 학기에 가장 어려운 숙제를 해내야 한다. 숨 죽이고 일부터 해내자. 

 

아침에 일찍 눈 떴는데도 오늘 할 일은 손도 대지 못했다. 일을 하려면 머리부터 아프다. 놀러다니면 나아지는데 왜 이렇게 머리를 써야 할 때마다 아픈지 모르겠다. 일 하기 싫은 병? 덕분에 견디는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숙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