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22. 7. 12. 22:57

퇴근하자마자 아침에 듣다가 남긴 뉴스를 듣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든 잠을 몇 시간쯤 푹 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휴대폰을 켜놓고 잠든 바람에 다시 깼다.

 

며칠째 밤잠이 깊이 들지 않아서 몇 차례 깨기를 반복해서 수면의 질이 엉망이다. 낮에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긴장을 풀어놓으면 차 근처에 가서 어느 쪽 문을 열어야 운전할 수 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자다가 깬 바람에 애매한 저녁 시간이 괴로워질 것 같아서 밖에 나가야했다. 오늘 예정대로였다면 집안 청소를 꼼꼼하게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해야 하는데 또 미뤘다. 며칠 비가 내렸으니 저수지 물이 얼마나 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공원 토끼는 잘 있는지도 궁금했다.

 

어두워진 다음에 공원까지 걸어올라가는 게 몹시 신경 쓰여서 나서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이젠 차를 타고 공원 주차장까지 갈 수 있으니 밖에 나서는 게 한결 편해졌다. 이제 운전하지 않는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겠다.

 

공원 주차장까지 뒤쫓는 듯한 택시가 신경 쓰여서 저수지까지 올라갔다. 저수지 옆에 주차하고 저수지 둘레길을 한 바퀴 돈 다음에 공원으로 내려가서 운동 기구 몇 가지를 이용해서 오랜만에 깔짝깔짝 운동하는 시늉을 했다.

 

엊그제 남해 농협에서 사 온 파프리카를 통째 과일처럼 우적우적 베어서 먹었더니 두 개가 금세 너끈하게 들어갔다. 칼로 잘라서 먹으면 몇 조각 먹지 못하게 되는데 누군가 해 준 조언대로 파프리카를 통째 베어 먹으니 먹기가 오히려 편하다. 노란색 파프리카만 맛있게 먹어서 이제 남은 건 주황색과 빨간색 파프리카뿐이다.

 

식탐에 홀랑 넘어가서 뭐든지 먹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파프리카 두 개로 끝냈다. 몸이 부쩍 무거워져서 이대로는 내 몸을 지탱하고 걷기도 힘들겠다.

 

*

아직 2주나 남은 사흘의 휴가를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지 딸이랑 통화하면서 또 여행 경로를 바꿨다. 작년 여름 사진을 보니까 우리가 제주에서 아주 재밌게 놀았더란다. 그때 마침 비행기 요금도 아주 저렴했고, 숙소도 꽤 괜찮은 호텔이 3만 원 정도여서 예정보다 이틀 더 묵었다. 그런데 올여름은 평소와 다름없는 극성수기가 그대로 이어질 것 같으니 제주에 가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마침 비행기값도 상당히 비싸졌으니 그 돈으로 차에 기름 넣고 실컷 다니는 게 효율적이겠다고 말하는 딸이 이번엔 여름에 남동쪽은 너무 더울 것 같으니 이왕에 북쪽으로 갈 수 없다면 서쪽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담양, 광주, 전주 정도 들먹였다. 여행 일정을 다시 짜야한다. 함께 가주는 딸이 원하는 대로.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

걸으면서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보석 같은 느낌이나 말은 자리를 옮기는 순간 사라졌다. 그 순간의 임무를 다하고 내 속에 다시 되새김질되지 않는 조악한 기억력, 사진밖에 이젠 남는 게 없다. 잠시 붙들어두고 싶었던 단어가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다. 힘들어서 머릿속을 헤집을 수도 없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다.

 

점점 나빠지는 내 머리는 끝내 휴식을 원하는 모양이다. 사지 멀쩡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읽고 인지하게 하고 갈고닦아도 돌아서는 순간 어두워지는 나이다. 보고 또 봐도 아는 단어를 그대로 배열하는 게 잘 되지 않아서 눈에 들어오는 것을 손으로 옮겨 써서 그 감각으로 기억을 조금 더 오래 남기는 방법도 때론 유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