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20~2024>/<2023>

나만의 노천 카페

자 작 나 무 2023. 10. 22. 21:43

2023년 10월 22일

며칠 연이어 밤운전을 했다. 몇 시간씩..... 뇌가 터질 정도로 섬뜩하게 달궜다. 생사를 걸 일도 아닌데 전신에 세포가 살아야겠다고 발악할 지경으로 팽팽한 긴장 상태로 내몰았다. 

 

그 밤에 사 온 것 중에 먹을만한 것은 이것 하나. 나누어서 며칠은 먹을 분량이다. 낮에 나서기 전에 덜어서 오븐에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이메일함을 열었더니 클라우드 내가 쓸 수 있는 용량이 가득찼다고 돈을 더 내고 용량 많은 것을 쓰라고 권고하는 이메일이 있다. 사진을 마구 찍고 정리하지 않고 뒀더니 엄청난 자리를 차지한 모양이다. 사진 몇 장 정리하겠다고 보관함을 열었다가 마침 오늘이 마감 기한인 커피 쿠폰을 발견했다.

 

무슨 행사에서 온라인으로 받은 건데 기한이 꽤 남았다고 두고 잊은 거였다. 그런데 하루 지난 뒤에 발견한 게 아니라 마지막 날짜가 오늘인데 그걸 아침에 발견한 거다. 핑계 생긴 김에 그 프랜차이즈 카페에 찾아갔다. 자리는 좋은데 시끄럽고 사람 많아서 거기 다신 갈 일이 없겠다. 공짜 커피 쿠폰이 있어서 커피 한 잔 마신 것으로 족하다.

 

커피는 그럭저럭 맛있지만, 그렇게 붐비고 시끄러운 곳에 왜 앉아있는지 이상하다. 밖에 나가면 낮에 아직은 춥지도 않고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집에 그냥 가긴 아쉬워서 나만의 노천카페를 열었다. 자주 걷는 바닷가 산책길에 쓰레기 봉지를 유일하게 묶어두지 않은 벤치. 그 옆에 어디든 벤치 양 옆 손잡이에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묶어놔서 앉기도 민망하다.

 

8월에 주문한 책인데 몇 장 읽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내가 산 책을 그대로 선물했다. 읽지 못한 책이어서 새로 주문했다. 가볍게 읽기엔 내가 찾는 게 있어서 아무 때나 잡고 읽지 못해서 계속 모셔뒀다. 오늘 마침 햇빛 잘 비치는 자리에 앉아서 집에서 끓여 온 모과차를 마시며 책 몇 장을 읽었다

 

그 자리에 음악 틀어주는 스피커가 달려서 이어폰으로 소음을 차단하고 바람을 느끼며 공기 좋은 곳에서 읽는 책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달하고 감동적이었다. 몇 장 넘기면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아끼고 아껴서 남겨뒀다가 읽을 참이었다. 소설책 끊은 지 30년 남짓 됐다. 그런데 이 책은 내게 의미가 남다르다.

 

 

 

 

저만치 떨어진 자리에 화장실이 있다. 바로 앞에서 바다를 볼 수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화장실까지 확보할 수 있는 훌륭한 노천카페 자리다. 어둑해지기 전에 일어섰다.

 

차를 많이 마셔서 중간에 짐 싸서 화장실 한 번 다녀와서는 아예 드러누워서 책을 읽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더러 신기해서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른 벤치는 다 비어있으니 내가 한 자리 차지했다고 민원 들어오진 않을 테다. 

 

옮겨가면 아무 때나 나와서 이런 풍경을 보기는 어려울 테니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려고 이틀 연이어 바닷가에서 놀았다. 어제는 많은 사람 속에서 혼자 걷다가 문득 사무치게 외로워서 울고, 오늘은 책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화장실에 가서 수습할 화장지를 챙긴 다음에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가서야 감정이 잦아들었다. 말할 수 없는 말이 눈물로 흘렀다.

여러모로 가슴 벅찬 이틀을 보냈다.

이번 생의 뭔가가 일단락되는 순간을 맞는 기분이랄까...... 오묘한 오춘기에 사춘기 소녀 같아져서 이 묘한 고갯길을 잘 넘으려고 노력한 주말은 많은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들어가는 길에 뜨끈한 국밥을 한 그릇 먹을까 했는데 그 집은 일요일 점심 장사로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1인분 주는 근처 음식점에서 따끈한 튀김덮밥을 먹었다. 딸에게 간략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문자로 쓰고 있는데 딸 전화가 걸려온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심기 경호해 주느라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어제 오후에 바닷가에 있는데 갑자기 추워져서 두꺼운 옷을 다음 주에 가지러 오겠다고 말했다. 굳이 다음 주에 올 건데 그 시각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당장 일교차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금요일 저녁에 다녀간 엄마에게 갖다 달라고 하긴 미안하다는 말을 에둘러서 하는 게 아닐 수 없다. 딸은 말을 직설적으로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도 뭔가 갖다 주러 갔다가 밤운전을 했고, 토요일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간다고 말하지 않고 근처에 가서 곧 도착한다고 했더니 아쉬운 민원을 처리해 줘서 좋아하는 눈치다. 새콤하게 맛 잘든 작은 귤을 한 봉지 싸들고 가서 건네줬다.

 

날이 추워지면서 옛날 옛적에 아랫목에 이불 한 장 깔고 형제자매들 오손도손 발 넣고 조르르 몰려 앉아서 손톱 밑이 노랗게 물들 정도로 귤 까먹던 생각이 났다. 뜬금없이 옛날 생각이 문득 나서 귤을 챙겨서 갖다 줬더니 오늘도 열심히 귤 까먹으면서 전화한다며 내게 전화를 또 걸어온다.

 

그렇게 뜨겁던 머리가 시원해졌다. 기침 가래에 시달리고 계속 코 안에 열이 차서 코피가 터지던 것이 이틀 바닷가에서 좀 놀다 왔더니 괜찮아졌다. 못 놀아서 생긴 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