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치유
2023-11-17
기분 좋은 상태에서 동네 마트에 갔다. 그 마트에 들어가기 전에 차 안에서 모시 인절미를 몇 개 집어먹었다. 배고플 때 마트에 가면 꼭 장바구니가 넘친다. 그렇게 단단히 내 배를 채우고 들어갔어도 장바구니는 넘쳤다. 고구마만 담으면 됐는데, 감자, 무, 브로콜리, 가지, 파, 연근, 마늘 등등 채소를 눈에 보이는 대로 담았다.
멸치 육수를 내고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김치찌개 + 무조림을 섞어서 해버렸다. 이제 내가 한 음식을 먹을 사람은 나뿐이니까 내 식성대로 마음껏 재료를 쓰고 음식을 변형해도 괜찮으니까.....
짜고 맵지 않게 국물을 조금 넣어서 자박하게 졸인 김치찌개에 무와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밥 없이 한 그릇 떠서 먹으니 푸짐하다. 딸이 좋아하는 등갈비 김치찜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진열장 앞에서 등갈비를 쳐다보다가 김치찌개용 돼지고기 한 팩을 사 왔다.
집에 곧장 가지 않고 카페에 앉아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딸이 전화해서 내가 맛있게 해 주던 등갈비 김찌찜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생각이 너무 쉽게 연결되고 때론 딸이 표현하지 않은 감정까지 떨어져 있어도 읽어지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가끔 놀란다.
다음 주에 치를 일이 그날 하루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오후에 미리 숙소를 한 곳 더 따로 알아봤다. 꼭 그날 기숙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던 딸의 일정에 맞춰서 이틀 강행군 해야 할 판이었는데 이상하게 하루 더 머물러도 되게 일정이 변화했다는 말을 전한다.
더 많은 것에 감사한 생각이 드는 건 이틀 연이어 출근하지 않은 것도 한 몫했다.
어제는 온몸에 크고 작은 멍자국을 보고 놀랐고, 오늘 아침엔 온몸이 저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오후에 그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인지,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편안해진 것인지....
오늘은 많은 것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저절로 떠오르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의 연락이 연이어 있었다. 혼자 있어도 어쩐지 외롭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은 이상한 날이다. 며칠 사이에 입맛도 돌아오고 기분도 좋아졌다. 이럴 때 거의 글을 쓰지 않으니 남은 기록은 슬프고 쓸쓸한 것 투성이인 것 같아서 오늘은 점 하나 찍는다.
*
밖이 추워지니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냉기 도는 방에 온풍기라도 틀고 떨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감사하다.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을 직접 할 수 있는 내 상태에도 또한 감사하다. 사소한 욕심도 내려놓아야 감사하는 일이 많아진다. 생각을 돌이키는 순간 과하지도 않은 욕심에 체한다.
흰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올라온다. 내일은 헤나 염색을 하고 방안에 콕 틀어박혀서 일을 최대한 많이 해야겠다. 혼잣말하는 수준이 점점 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