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23. 12. 4. 19:53

새벽에 일찍 깨서 계속 잠들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출근해서 그런지 오늘은 더 힘든 월요일이었다. 말과 글에 민감한 나는 무심하게 누군가 복도에서 큰소리로 내뱉는 욕설만으로도 온몸이 아프다. 친구들끼리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칠고 저급한 욕설이 난무한 곳. 학교는 공공장소인데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눈곱만큼도 없다. 너한테 욕 한 거 아니니까 신경 끄란다. 눈을 부릅뜨고 대든다.

 

내 자식보다 어린 녀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교무실 앞에서 'C.8ㄴ'이라고 큰 소리로 욕한다. 남학생이 남학생에게 그렇게 욕한다. 놈도 아니고 꼭 년이라고 붙여서 큰소리로 욕하며 떠든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소리로 욕해도 아무도 한마디 하는 이가 없다. 그게 잘못된 말과 행동이라고 가르쳐야 마땅할 학교에서, 교무실 앞에서 조차 멋대로 떠들어도 아무도 나무라는 이가 없다. 같은 목소리가 없다. 나 혼자 외계인이다.

 

*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정말 돌아가야 할 곳으로.

 

퇴근하고 집 근처에 와서 차를 세워놓고 혼자 빈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차 안에 계속 앉아있었다. 딸이 전화해서 사람 목소리를 듣는다. 학교에서 듣는 목소리는 전쟁터에서 영혼 없는 사이보그들이 내는 기계음 같다. 사람 목소리가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일부분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무너져 내렸을까. 그런 줄도 모르고 다들 학원만 보낸다. 주말에는 학원 가야 하고, 방과 후에도 학원 가야 하니까 수업 서너 시간은 빼먹고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학원엔 돈 내고 가니까 빠질 수 없으니 학교 수업은 그냥 빼달란다.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자야겠다.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내가 욕을 배우지 않고 욕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

아끼는 제자가 맨발로 슬리퍼를 끌고 기숙사로 들어간다. 왜 양말을 신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양말을 말릴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주말에 집에서 가족을 만나서 다 보살핌을 받고 빨래도 세탁기 돌려서 말려서 들고 오는 줄 알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발이 발갛다. 추워서 움츠린 어깨에 얼굴색도 좋지 않다.

 

작년에 우연히 그 학생의 상황을 알게 된 동료가 나에게 말해준 게 있어서 더 신경 쓰인다. 양말 빨지 않아도 더 신을 수 있는 것 넉넉하게 한 묶음 사다 주고 싶다. 운동화도 발에 맞지 않는 것 구겨 신고 다니지 않아도 되게 한 켤레 새 운동화를 사주고 싶다. 내 마음이 한낱 동정으로 느껴져서 불편할까 봐 말도 꺼내지 못한다.

 

데리고 가서 장갑도 사주고, 양말도 사주고 운동화도 사주고 싶다.

 

조금만 더 견디면 더 나은 날이 올까. 

 

오늘 오전에 누군가 익명으로 '애기가 되고 싶고, 어려져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내용의 오픈톡을 보냈다. 누군지 알 수 없다. 우리 반 학생인지, 내 수업 듣는 학생인지...... 내가 대신 좀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싶지만, 함부로 손 내밀어서 한 번만 손 잡아주고 떠나면 더 힘들까 봐 그럴 수도 없다. 그래도 그 아이는 내게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그 아이는 요즘 힘든 모양이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많다. 사랑은커녕 목숨이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는 위험한 현실 위에서 고스란히 그 위협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도 있다. 눈물도 흘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꿈을 현실로 겪는 이웃의 아이도 있다. 언젠가 나도 그랬을 수 있고, 언젠가 내가 그런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서 태어나도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기를. 춥지 않게 겨울을 나고, 배곯지 않고 삶을 찾아갈 수 있기를. 

 

토닥토닥 잠시 마음 녹일 찜질팩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어차피 그들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고, 나는 나밖에 구원할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내 생각뿐이지. 어릴 때 느낀 이런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을 위해 뭔가 해줄 능력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타인의 고통도 너무나 민감하게 느끼는 내 얇고 여린 감정의 실핏줄이 매번 터질 것만 같아서.

 

글을 쓰는 동안 감정은 원인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매듭은 풀린다. 실존하는 고통은 없다. 감정과 생각은 뿌리도 없이 잔가지를 친다. 조금만 훑어보면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고통을 꿈처럼 만들어서 학습하는 거다. 삶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대부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