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선 물메기 철에는 무를 숭덩숭덩 비스듬하게 썰어 넣고 깔끔하게 끓인 물메기탕을 먹는다. 입에 넣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부드럽다 못해 희미한 물메기탕 맛을 한 번 보고 나면 찬바람 날 때 물메기탕 한 그릇 먹는 게 간절해진다. 초봄에 새 쑥 넣고 끓인 도다리 쑥국처럼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입에 길든 한철 음식이다.
어제 낮에 들른 바닷가에서 제때 팔려나가지 못한 물메기를 손질해서 말리는 풍경을 보고 그 맛이 떠올랐다. 시장에 가면 커다란 대야에서 큰 눈을 꿈벅거리며 입으로 뻐끔뻐끔 숨 쉬는 물메기를 흔하게 본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물메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값이 내려간다.
이른 어둠에 추위까지 더해지는 저녁 장에 팔려 가지 못한 물메기는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손질해서 툭툭 몇 도막으로 칼질해서 반값에 내놓기도 하고, 큰 메기는 그대로 뒀다가 말끔하게 포를 떠서 사진처럼 말린다. 말린 물메기로 찜 요리를 해서 양념 맛에 쪽쪽 뼈까지 빨아먹던 기억이 있다.
때론 말갛게 잘 마른 물메기를 쥐포 뜯어먹듯이 찢어서 먹기도 한다. 물메기 포는 잔가시가 좀 있지만 잘 발라 먹으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난다.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 생선이다.
바람에 말리는 물메기(=곰치)를 보면서 문득 기억하는 여러 가지 맛이 떠올랐다.
어릴 때 맛있게 먹은 기억 덕분에 시장에서 곰치가 쌀 때 사다가 시원하게 국 끓여서 딸에게 맛 보여준 아련한 기억. 어머니의 음식 솜씨, 손맛,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 솜씨로 늘 딸에게 식당 차려도 되겠다고 칭찬받으며 으쓱해 하던 순간, 내 기억의 어떤 부분은 참 맛깔스럽고 좋았구나 싶다. 삶은 기억으로 반복 재생산되고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