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 수목원
2024-05-17
한 시간 일찍 퇴근하고 곧장 거창군으로 달렸다. 몇 달 만에 '꽃두레'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간결하지만 한 가지도 빠짐없이 맛있는 반찬을 남김없이 다 먹고 일어섰다. 거창군에 무슨 꽃 축제도 있다고 하니 다음날 꽃구경도 좀 하고, 사과 농장 구경도 할 참이었다.
근처 함양군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한 늦은 저녁, 예약 확정 문자가 무색하게 우리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종이를 내민다. 여행앱 회사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내가 예약한 시점에 호텔 측에서 문을 걸어 닫았다는 거다. 오전 10시에 예약했는데 그때 내 예약이 확정된 뒤에 호텔 측에서 더 비싼 값에 객실을 내놓기 위해 그 여행회사 쪽 창을 닫아버린 거다.
퇴근한 뒤에 달려온 터라 뭔가 어긋난 일정에 불쾌함이 치밀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따져도 나올 게 없는 것 같은 분위기다. 자기네가 잘못했으면서 책임은 져줄 수 없다는 거다. 대체 숙소를 알아봐 준다고 했지만, 그 동네 다른 숙소는 안 봐도 뻔하다.
이미 불쾌해진 딸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함양 상림 공원에서 아이스크림 한 개씩 사 먹고 열불 나는 속을 가라앉혔다. 엄청 차분하게 상담원과 통화하고 전화를 끊고, 우리가 받을 피해를 줄이는 게 그 상황에선 최선의 수인 것 같았다.
밤늦게 고속도로를 있는 힘껏 달리는 중에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는 호들갑 떠는 걸 못 봤어. 그래서 나도 그런가 봐."
나는 다소 호들갑스런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큰일이 생기면 의외로 나는 몹시 차분하게 일을 정리하는 방향부터 정하고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더라는 거다. 그래서 자기가 T로 자랐다는 썰을 푼다.
딸이 뭔가 실수해도 왜 그랬냐고 소리 지르거나 따지지 않고,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정리하는 수순을 밟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냐고 징징거리고 호들갑 떨고 그러는 걸 못 봐서 자기도 그렇게 배웠다고 한다. 냉정 하다기보다는 깔끔하게 감정 처리를 잘하려고 애쓰면서 산 것이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둘이 가방 싸서 여행간다고 나섰다가 멀리 가서 밥만 먹고 밤늦게 돌아왔다. 딸과는 긴 호흡을 맞춰야 할 인연이므로 의외로 나는 잘 참고 한 걸음 물러설 줄도 아는 모습을 보이며 살았던가 보다.
2024-05-18
종종 가는 음식점 경품 추첨에서 식사권이 당첨되어서 그 집에 식사하러 갔다가 근처에 있는 아웃렛에 들렀다.
인형 구경 좀 하고, 딸내미 옷, 신발, 가방까지 마침 눈에 드는 게 있어서 몇 가지 샀다.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었으면 내가 사주는 내 생일 선물로 살 생각도 있었다. 전날 무리하게 멀리 다녀온 뒤여서 눈이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딸이 같이 나가주는데 무조건 같이 다녀야 하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여기저기 다녔다.
한밭 수목원 장미원에 예쁜 장미가 한창이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넓은 공원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 취업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자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게 딸에겐 부담스러울 줄 안다. 내 생일 핑계로 마지막인 듯 하루를 즐겼다. 일주일을 내 생일 주간이라고 우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