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03. 11. 5. 23:30

깨어보니 하늘은 비가 금세라도 쏟아질 듯 흐려져 있다.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몸이 얼마나 피곤했던 것인지 좀처럼 길게 자지 않던 낮잠을 밤같이 잤다.

커튼을 다시 열어야 할 만큼 흐린 날씨 때문에 방안은 어두웠다. 배고픈 것도 잊고 그렇게 빠져들었던 잠 속에서 친구와 노는 꿈을 꿨다. 어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한 첩을 먹어보려고 국에다 밥을 한 술 덜어서 말아먹는 중에 갑자기 꿈 생각이 났다.

목이 컥 막히고 통곡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 살았고 여고 때까지 같은 학교에 다녀서 누구보다 절친한 친구였다. 대학을 가면서 헤어지게 되었지만 졸업하고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유일한 친구였었다.

올해로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지 25년이 되었다. 참 야무지고 부지런했던 칠 공주 중에 셋째 딸이었다. 그 친구가 먼저 결혼을 하고 뜸해졌다가 고향에다 학원을 차리면서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워낙 바쁜 일과를 보내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고 돈이 들어올 때 많이 벌어야 한다고 동분서주했던 친구였다. 그러다 과로로 병을 얻고 그 병을 시작으로 다른 병을 얻었다. 급기야 어느 날 정신을 놓고 쓰러진 후, 짧은 시간 손을 써 볼 여지도 없이 급히 생을 마감했다. 작년 이때쯤이었나 보다.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친구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어릴 적 함께 자전거를 타다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집 근처 바닷가에서 함께 자전거를 교대로 타다가 그 친구 차례인데 갔다가 돌아오질 않아 다른 친구와 함께 쫓아가 보니 운하를 파서 하필 깊은 바다에 자전거와 함께 빠졌다. 길 가던 어떤 분이 그 추운 겨울에 바다에 뛰어들어 내 친구를 구해주셨다. 

 
이후에 그 일로 명이 길 것이라 하더니 한창나이에 그렇게 쉽게 떠날 줄 몰랐다.  참으로 황망히 간 친구의 영정 앞에서 '에이..... 나쁜 년...... 에이 나쁜 년.....' 그 말 밖에 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내 친구.

밥을 먹다 목이 메는데도 울면서도 밥을 먹었다. 먹고 약도 먹고 아픈 것 빨리 나아서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리 급히 죽으면 나더러 나쁜 년이라 욕하며 그리워서 애태울 친구도 없을 텐데 그렇게 욕 얻어먹을 일도 없을 텐데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가슴에 묻었던 친구였는데 불현듯 대낮 꿈속에 고운 한복을 입고 나타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다니고 음식도 함께 먹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느새 그 친구가 떠난 지 1주기가 되었나 보다. 밥먹고 화장실에 가면서도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맺혀 소리까지 엉엉 내며 울어가며 '에이..... 나쁜 년..' 나도 모르게 욕을 하게 된다.

일찍 죽어서 나쁜 년이다. 내게 제대로 된 친구라곤 저뿐이었는데, 나를 친구 없이 외톨이처럼 만들어놓은 나쁜 년이다. 저랑 꼭 닮은 아들 녀석 혼자 두고 갔으니 정말 나쁜 년이다.

내 앨범에 친구들과 어울려 찍은 유일한 사진 속의 주인공... 그 친구는 꿈속에서 여고 졸업식 때 찍은 사진 속에 나온 그 색깔 한복을 입고 있었다.

아무려면 저승이 이승만 하겠는가. 사는 게 고달프고 벅찬 일투성이여서 버리고 싶은 현실 위에 서 있더라도 지금 숨 쉬고 건강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 아닌가..... 떠나간 친구 생각에 잠시 갖은 한숨을 추슬러본다.

보고싶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