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8
2021-01-28
앞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러자 거울 속에 철없던 30대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비친다. 물론 그때보다는 형편없이 늙었지만, 이 나이라면 아직도 청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때는 여자 나이 마흔이면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고 여겼다. 읽는 책마다 그렇게 쓰여 있었고, 나도 그 이야기를 믿었다. 그래서 십 대 시절에는 서른까지만 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진지한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그때는 서른이 되면 인생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회한은 이제 그만 접어두어야겠다. 젊었을 때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컸을 테지. 남들처럼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울리지 않는 옷도 입어보며 그렇게 애썼나 보다.
2014년, 52세의 고운 중년 여성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나는 52세가 되면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날씬하고, 안정된 가정과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품 있는 모습까지 완벽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나이에 도달하면 서글퍼질 것이라고 여겼다. 참 건방진 생각이었다.
이제 내가 그 나이에 이르렀다. 40대 중반의 여성들이 나를 보며 안타깝게 생각할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내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 생각이 나를 살릴 수도 있고, 괴롭힐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을 정화하고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을 머금고 있으면 곪아버린다. 이렇게라도 흘려보내고 털어내려는 이유다. 나는 어차피 내 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 그 시간 동안 덜 괴롭고, 무지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완전히 가라앉지 않기를 바란다. 한동안 쌓여온 잡념들을 어떻게든 털어내야겠다. 툴툴거리면 먼지가 조금은 사라지겠지. 먼지가 부옇게 떠올랐다가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듯, 나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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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비공개로 저장한 일기 한 편을 찾아서 꺼냈다. 나라고 지칭하는 '나'는 어떤 면에선 변하지 않고 일관성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