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03~2009>/<2003>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

자 작 나 무 2003. 11. 19. 13:00

2003.11.19.

 

 

Lara Fabian의 이 노래가 가을 낙엽이 뒹구는 저 거리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펴놓고 이 노래를 몇 번씩 반복해서 듣는다.


아침을 간단히 시리얼로 떼웠다. 아이를 보낼 시간 즈음 꼭 집 앞을 지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께 산 신선한 우유에 언젠가 사두고 먹지 않았던 시리얼을 넣어서 아이들 간식 같은 아침을 먹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 또 잠시 난 무척 행복하다.


언젠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아침에 밥을 주지 않고 시리얼을 주길래 사람이 이런걸 먹고 어찌 사느냐고 밥 달라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문득 나서 혼자 웃었다. 나도 가끔은 이런걸 먹고 사는데.......


슬픔에 빠져들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들 때 행복감을 느낀다. 이 기분이 종일 나를 편안하게 할 것은 못될지라도 이런 감정에 잠시라도 도취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거리에 나서면 바람이 예전 같지 않다. 쇼윈도 안에 걸린 더 따뜻해 보이는 옷에 눈길이 절로 간다. 어깨는 조금씩 움츠려지고 나는 가끔 투명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거리에 있는 사람들 속을 스쳐 간다. 아무도 나를 눈여겨 보는 이 없고 나도 그다지 의미 있는 시선을 던질 곳 없는 그 순간 외부의 느낌을 잊고 정지된 시간 속에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더 왜소해진다. 옷깃을 파고드는 목이 아래로 조금씩 떨구어지면서 가끔 온라인에서 거만하게 보였을지도 모를 지나간 말들에 대해 반성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귀하고 의미 있는 존재들임에도 나와의 관계가 누구나와 그럴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타인에게 걸어오는 말을 냉정하고 때론 건방진 말투로 닫아버리는 내 무성의함과 자기방어적인 태도가 결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그것이 습관화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갈수록 사람을 가려서 대하게 되는 것 같다. 인연이 없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너무 많은 이들과 복잡하게 얽히는 것도 좋지 못한 것 같아 수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부딪힐 수 있는 인터넷상에서 사람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 결국 쌀쌀함과 일종의 무시하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도 가능한데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쉬운 방법이랍시고 간혹 그런 말투를 쓴다.


듣기 거북한 이상한 느낌의 말들을 던졌을 때만 그리한다지만, 썩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그렇게 주고받아야 할 때가 가끔 곤혹스럽다. 말 안에 조금이라도 악의나 독기가 묻어 있다면 말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 마디를 하더라도 조심스레 해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대라도 엄연히 현실에서 공존하는 존재이고 내가 상처받을 수 있는 말엔 필연적으로 상대도 상처받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내게 상처 내는 일을 스스로 하지 않듯 남도 똑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인듯싶다.


알면서도 아는 대로 행하지 못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잊지 않도록 노력하려 한다. 구업을 짓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말문을 닫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말하되 잘 가려서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소리 없는 대화 채팅을 하면서도 나는 늘 그 생각,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감미로운 음악이 굳었던 마음을 풀어주는 것처럼 부드럽고 편안함을 주는 대화가 외롭고 추위에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는 화로가 되어주기도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