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고복저수지
2024-10-15
흐린 날, 그냥 하늘만 흐린 게 아니다. 남쪽 바닷가 태생인 나는 이런 농도의 이런 색감의 흐린 날이 아직도 낯설고 불편하다. 갑자기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눈 뜨고 걷다가 나오는 재채기에 눈을 감아야 할 정도였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에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였기 망정이지, 운전 중에 연신 나오는 재채기에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정도였다.
지난 금요일에 명상정원에 가려고 나섰다가, 금요일 오후 이른 퇴근길 행렬에 길이 막혀서 냉큼 행선지를 성심당 DCC점으로 바꿨다. 빵 사러 갔다가 지하주차장에서 차단 바를 통과한 뒤에 급작스레 후진하며 주차하는 차를 피하느라 살짝 뒤로 차를 옮긴 것이 문제가 되었다. 역시 과한 배려는 하는 게 아니다.
그들도 뒤늦게 CCTV를 확인하고 내게만 그 차단기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기엔 내가 억울할 것 같아서 연락하기를 망설이다가 누군가는 책임져야 해서 그 상황에서 가장 만만한 내게 배상 책임을 물었다. 간단하게 대물 배상으로 보험 처리하면 끝날 일이다. 그 순간 내가 차를 조금 옮겨주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로 생각하고 살짝 후진한 뒤에 그 차단기에 정말 살짝 부딪혀서 차량 이벤트 영상에도 기록되지 않은 미미한 사고(?)였다.
다른 차를 치거나 내 차가 긁힌 것도 아니어서 그러려니 하고 그 일은 최대한 가볍게 넘겼다. 어떠한 경우에도 과한 친절과 배려를 하지 말 것.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오히려 넘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부족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과하다.
작은 백팩에 우산을 하나 넣고, 재채기와 콧물 세례에서 나를 구해줄 티슈 한 봉지 넣어서 매고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다. 걷기 싫어질 때까지 걷다가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면 된다. 이 길은 3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왕복으로 끝까지 걷다 오면 7Km 정도 되겠다.
물을 보며 인가가 없는 길을 걷는 게 좋다.
2Km 조금 넘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고복자연공원 방문자센터 앞에 있던 매운탕 집이 떠오르는 걸 보니 저녁 먹을 때가 넘었다. 민물 매운탕을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20대에 한두 번쯤? 바닷가에 살면서 민물 생선으로 끓인 매운탕을 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
외로움을 위로 보낼 수 있게 위로를 해야 하는 거였구나......ㅋ
이런 날씨엔 그림자 마저 무겁고 축축해져 지워지고 만다. 혼자 오래 걷기엔 점점 늪처럼 걸음이 무거워진다.
맑은 날에 다시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