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20~2024>/<2024>

생각, 생각, 생각

자 작 나 무 2024. 11. 10. 23:30

2024-11-10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는 즉시 어떤 방법으로 수습할 것인지 생각한다. 대부분 몇 가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최대한 빨리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막다른 길은 내 잘못을 고칠 수 없을 때다.

 

어릴 때 그런 꿈을 반복해서 꿨다. 이해하기 힘든 사소한 욕심을 부려서 어떤 일을 그르치고 불편한 감정을 머금고 그걸 견디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나에게 알리는 도덕 교육 시간 같은 꿈을, 경우를 달리하여 반복해서 꿨다. 그 바람에 내가 알면서도 잘못한 일은 사소한 것도 반복해서 끊임없이 내 속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그 상태로는 오래 견디기 힘들다. 완벽한 자기기만이 가능하지 않고서는 피폐해진다. 두 가지 모두 좋은 결과는 아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데 없었던 것처럼 기억을 덮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자기기만이 시작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가 쏟아진다. 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나를 체벌하듯 일을 벌여서 자신을 괴롭힌다.

 

사람과 일없이 얽히지 말 것,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구분하지 않고 얽히고 설키는 경우를 최대한 줄인다. 좋은 것을 얻겠다고 뛰어들면 그 관계에서 반드시 좋은 것만 얻는 건 아니다. 그 욕심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의 수를 최소화하여 살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산다. 좋게 표현하면 그렇지만, 사람과 관계 맺기에 소극적이다. 내가 굳이 사람을 만나서 뭐 하냐는 식으로 생각해 버린다.

 

*

그나마 감당할 자신 없으면서 벌이는 유치한 일 한 가지. 마음이 허할 때 어떻게 될 줄 뻔히 알면서 탄수화물 폭식하는 정도가 문제라면 문제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자주 운동하러 다녀야겠다. 근력 운동한다고 살 빠질 것도 아닌데 이렇게 찌워서 되겠나. 살찌니까 내가 다른 사람 같다. 

 

딸이 자꾸만 달달한 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주기적으로 빵집에서 빵을 사다 나르다 보니 나도 덩달아 많이 먹는다. 사다 놓지 않으면 먹지 않는데, 취업 시험을 보름 남짓 앞두고 스트레스 풀 길 없는 딸에게 뭐든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사다 주다 보니 나도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심당에서 무슨 시루라고 케이크만 새로 나오면 들먹인다. 이번에도 밤시루가 나와서 맛보기용 작은 컵케이크로 대신하려고 하나 사다 줬더니, 너무 맛있다고 제대로 먹고 싶다고 며칠 노래를 불렀다. 밤시루는 밤맛 나는 크림이 빨리 쉬어서 반쯤 먹고 버려서 아쉬웠다. 비싼 케이크여서 성심당에 가서 이 케이크만 왜 이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불편한 말은 하지 못하고 새로 빵만 한 가방 사서 나왔다.

 

이제 2주 남았다.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10대에 학교에서 배운 세상은 60살 정도까지 살면 대략 끝나는 것이어서 인생을 길게 설계하지 않았다. 그간 세상이 많이 변해서 앞으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좀 오래 살아야 하니까 일찍 지치고 퍼지지 않게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유 없을 때 여유를 부리려니 속이 부대낀다. 

 

내 걱정의 근원은 다른 문제도 있지만, 딸이 생각만큼 공부를 체계 있게 열심히 하진 않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어디 오가며 시간 버리는 것 아깝다며 도서관에 나가지 않고 매일 집에서 공부한다. 운동하러 나갈 때 외엔 잠옷 바람에 제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간혹 들어가면 10번에 8번은 폰을 보고 있거나, 패드로 게임을 하고 있다. 하필 타이밍이 쉴 때라고는 하지만, 열의가 있는지 종종 의심한다.

 

이 동네에 올해 선발 인원이 한 명도 없어서 다른 동네에 시험 치니까 그냥 대충 치고 떨어져 버릴 생각을 품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더 할 수 있는 것도 덜한 게 아닌지, 내가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아주 든든한 병풍처럼 경제적인 버팀목으로 오래 견뎌줄 수 있다면 이런 하찮은 혹은 같잖은 걱정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딸이 대학 시험에 재수하면서 삼수, 사수까지 한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유를 부렸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하니까, 꼭 하고 싶으면 가고 싶은 대학 갈 때까지 내가 뒤를 봐준다고 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취업 시험 재수했으니, 이번엔 그냥 붙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풀거린다. 정작 그런 수험 생활로 스스로 갇힌 생활을 하는 본인이 답답할 수도 있는데, 그건 내 생각이고 딸은 아무 걱정 없이 지금처럼 사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딸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덜 열심히 하는 것의 진위가 문제가 아니다. 이 불안감의 근원은 내가 이럴 때 쓰려고 모은 돈을 몽땅 그 사기꾼에게 낚아 채인 것, 그래서 지금 필요한 시기에 벌어놓은 돈 까먹으며 조금 여유 있게 살 수도 있는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문제다. 그게 진짜 문제구나..... 에휴...... 쓰다 보니 내 답답한 위장과 갑갑한 머리는 그 문제를 벌인 장본인이 자꾸 거짓말을 하며 차일피일 송금 날짜를 미루다 결국엔 한 푼도 보내지 않는데 내가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는 거다. 혹시나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말 그대로 해결해 줄 수도 있다는 허튼 믿음을 매달고 있었다.

 

사기꾼 말도 믿다니...... 그건 아니지. 변호사, 법무사.... 형사. 만나야 할 부류의 사람들과 가장 간단하고 깔끔하게 이 절차를 넘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고 싶다. 그날 경찰서에 못 가서 또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