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25>/<2025>

새로 칠한 식탁, 그리고.....

자 작 나 무 2025. 1. 12. 22:46

2025-01-12

식탁 변신을 오후에 마무리하고 나니 팔다리에 힘이 빠져서 식탁을 제자리에 옮기려니 팔이 후들거린다. 딸을 불러내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숙주나물을 한 통 만들어서 오후 늦게야 한 끼를 먹었다. 식탁이 제자리에 있지 않아서 앉아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않는 거다.

 

딸은 외출하는 때를 제외하고 주말에는 방에 콕 틀어박혀서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소통하며 하는 게임에 빠져서 산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저러는 경우도 허다하다는데 이제야 저 꼴을 보게 돼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하려나. 

 

어릴 때 책 읽는 버릇 들여주지 않았다고 나를 나무라지를 않나. 아무리 책 읽게 분위기를 만들어도 맨날 손으로 하는 노략질 하며 시간 보내고 노는 데에 집중하는 걸 내가 어떻게 억지로 책을 읽게 만들겠냐고. 그래도 그 습관이 안 들어서 지금도 책을 못 읽겠다나 뭐라나.

 

열불이 나지만 언성 높일 일도 아니고 그래봐야 결과가 달라질 것도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인생을 사는 수밖에. 뒤늦게 다 큰 딸에게 무슨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나 싶다. 돈으로 자식을 뜻대로 하려는 부모들의 얄팍한 수는 이래서 나오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럴 능력도 없으니, 되바라지지만 않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뭘 하거나 간섭하지 말아야겠다.

일을 끝내고 나니 갑자기 피곤해져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초저녁에 잠들어서 꿀잠을 자고 거실에 나가보니 식탁 색이 예뻐서 마음에 든다. 냉동실에 있던 빵 한쪽 꺼내서 치즈 올려서 굽고, 달걀 프라이 해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킹스베리라는 딸기는 크고 향긋하고 맛있었다. 

 

소금 넣고 끓는 물에 잠시 넣었다가 건져서 식혔더니 아삭한 식감이 좋은 숙주나물 무침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먹고 기운 내서 욕실 바닥에 줄눈마다 앉은 때를 벗겨내고 나니 기분이 좀 풀린다. 줄눈 공사를 아주 시원찮게 해 놓은 것 같아서 흰 시멘트 사서 내가 한 번 더 일을 저지르고 싶기도 하다. 이사 올 때 줄눈용 시공 시멘트가 무거워서 버리고 온 게 아쉽다. 

 

집안 곳곳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혼자 해결하는 버릇 들어서 별별 자재와 공구가 많았다. 더 크게 일 벌이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다. 

 

*

어쩌다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을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점이 부족한지 도드라져서 떠오른다.  뒤늦게 애매한 사람 만나서 몸 고생 마음 고생하며 살 생각은 일절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은 안 되겠다. 

 

12월 3일 이후에 누가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이 있느냐고 주변에 열 사람만 말해보라고 한다. 내가 매일 들어가서 게시판을 읽는 커뮤니티는 단순한 친목 모임인데 그들 중 꽤 많은 사람이 사회가 안정되지 않아서 겪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잠을 잘 못 잔다고 한다. 꼭 누가 총을 맞아서 죽고, 다쳐야만 피해를 본 것인가. 이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는 그 일이 아녔으면 이렇게 극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을 거다.

 

헬스장에도 그날 이후에 사람들이 한동안 운동하러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가 언성 높이고 싸우고 나면, 아이들이 말도 못 하게 불편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게 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부수지 않았고, 아무도 때리지 않았는데 무슨 피해를 봤느냐고 말하면 그대로 숨이 콱 막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