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25. 5. 25. 21:49

2025-05-25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점에서 신나게 달리다가 암행 순찰대에 붙들렸다. 승용차 한 대가 내 차를 추월한 뒤에 경광등을 켜고 나에게 손짓했다. 곧 어두워질 텐데 애매한 지점에서 딱 걸렸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심장이 벌렁벌렁한 상태로 다가오는 경관을 보고 양쪽 차창을 다 내렸다.

 

주행차로와 추월차로의 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계속 달려서 오도 가도 못하게 막힌 지점을 뚫고 나가려고 약하게 열린 틈으로 추월에 성공했는데 어떻게 그 타이밍에 나를 발견한 암행 순찰대가 나를 쫓아온 거다.

 

덕분에 고속도로 갓길 정차도 해봤다.

 

뭔지 모르게 드라마틱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무섭게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게 아니라 친절하게 내가 뭘 위반했는지 알려주고는 현장에서 바로 딱지를 끊어줬다. 그 민머리 경찰관은 아주 친절하셔서 벌금 딱지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앞으론 급하다고 가속페달을 마구 밟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 것 같다.

 

저녁 약 먹을 시간이 넘으니 컨디션이 죽죽 떨어지고 감기 증상 때문에 느끼는 온몸의 통증이 엄습해서 빨리 도착해서 저녁 먹고 약을 먹을 참이었다. 그게 내 마음을 급하게 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차 세운 김에 그냥 그 자리에서 빈 속에라도 약을 먹으려고 찾다 보니 알약은 안 보이고 물약만 있어서 대충 챙겨 먹었다.

 

어제저녁부터 약 먹는 걸 핑계로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더니 얼굴이 퉁퉁 불어서 보톡스 맞은 사람 같다. 내 얼굴이 뭔가 다람쥐 같은 느낌이랄까. 

 

이후에 돌아오는 길에 아주 재밌는 상상을 했다. 고속도로 갓길에 주차했으니 다시 시동 걸어서 나가는 게 만만찮은지라 경찰관 아저씨가 계속 뒤를 봐주고 내가 출발할 수 있는 안전한 타이밍까지 계산해서 알려주셨다.  뭔가 나를 챙겨주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약한 모양이다. 머릿속으로 한 편의 콩트를 썼다. 이런 코믹하고 드라마틱한 감정을 유발하는 작은 이야기 하나를 살 붙여서 뭔가 익살스런 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낸 거다. 혼자만 볼 수 있는 영화관에서 코믹 멜로 장르의 영화를 즐기며 원룸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바퀴도 조그만 그 차를 몰고 얼마나 급했으면 그렇게 달리나 싶어서 나보다 빨리 달려서 찍힌 다른 차는 세우지 않고 내 차만 불러서 세운 거였다. 덕분에 약간의 협상(?)이 가능했다. 운전대를 잡고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절망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크게 쉬었다. 결과적으로 매주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내게 한 번은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웃렛이 있다. 이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웃렛에 들렀다. 더는 입을 수 없게 된 문제의 그 옷 대용품을 사러 갔다. 그런데 내가 요구한 사이즈가 오늘 다 팔렸다는 거다. 어차피 들어간 김에 눈에 익숙한 브랜드 매장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들게 예쁜 파란색 웃옷을 하나 골랐다.

 

입어보니 예쁜데, 내가 입고 나온 옷과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이상했다. 매장 직원이 내 꼴이 우스우니 그 웃옷에 어울릴 바지를 같이 입어보라고 권해줬다. 그간 갑자기 불은 몸에 터질 것 같은 바지를 겨우 잠그고 다녔는데 입고 있던 웃옷까지 짧아서 행색이 우스웠다. 좀 크고 통도 넓은 바지, 요즘 유행하는 옷을 입으니 여유 있고 괜찮아 보였다.

 

웃옷은 두고 바지를 사서 들고 나왔다. 이제야 점심 먹을 때마다 허리띠를 풀어야만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살 뺄 때까지 견디려고 했는데, 언제 빠질지 알 수 없으니 그냥 바지라도 맞는 것 하나 사서 입는 거지. 옷을 살 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입을 수 있는 옷이 있으니 내 옷은 새로 살 마음을 내기가 어려웠다.

 

얼떨결에 산 바지가 헐렁한 게 마음에 든다. 옷이 작아져서 몸을 거기에 맞추겠다는 생각은 우선 뒤로 밀치고 그냥 이대로 한동안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