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작 나 무 2009. 10. 25. 20:40

 

 

어제 피아골에 단풍 구경을 다녀왔다. 산길을 걸으면서 지난 해에도 다녀갔단 생각은 못하고 자꾸만 2년 전에 다녀왔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찾아보니 지난 가을 이 맘 때였다. 작년엔 삼홍소까지 겨우 헐떡거리며 올라갔고 내려올 때 다리도 풀리고 관절이 좋지 않아 주저 앉아 울 뻔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올해 오히려 체력이 더 좋아진 듯 했다. 계곡을 따라 난 바위길을 걸으면서도 그때만큼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숨이 가쁘지도 않았다. 지난해까진 그 전 해 교통사고 난 후 몸이 많이 망가지고 체중도 많이 불어서 어쨌거나 산길을 걷는 것은 좋아해도 힘들어 했는데 한결 나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삼홍소에서 조금 더 올라갔다. 집에서 늦게 출발한 탓에 점심 때가 지나서 산에 올라갔다.  그리 멀리 올라가진 못할 것 같고 적당히 단풍 든 곳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왕복 6Km

 

 

지난 해처럼 빨간 베낭을 매고 내 뒤를 잘도 쫓아왔다. 살 쪄서 걷기 힘들다고 떼 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좀 더 걸어도 좋겠다고 박자를 잘 맞춰줬다.

 

 

 

다리 난간을 흔들며 장난치며 재밌어 한다. 나는 어지러운데 겁도 없이 재밌단다.

 

 

해발 700m 지점 구계포 계곡. 산길은 3Km 가량인데  높이는 700m.

그 즈음에 단풍이 곱게 들어서 삼홍소에서 늦은 점심 도시락을 먹었는데도 구계포에서 다시 한번 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리를 동동 걷고 찬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지영이도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 사진 찍어주고 구경만 했다.

 

지난 가을보다는 산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작년엔 정말 산길에서 사람에 밟힐 지경이라고 느낄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올해는 어쩐지 좀 덜 했다. 그래도 단체 등산객들이 줄지어 지나갈 땐 어쩔 수 없이 덩달아 한팀인 듯 그 대열에 맞춰 열심히 걸어야했다. 혼자 와도 혼자 산길 걸을 일 없어 외롭지도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산길을 걸을 땐 모두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이다. 지영이도 나도 넘어지지 않게 아래를 보며 걸었다. 힘든 길을 좀 지나면서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가 그렇게 느낄 즈음 지영이도 그렇게 말했다. 발이 저절로 움직여지고 앞만 보고 걸으니 아무 생각없이 그냥 걷게 된다고.

 

내가 산에서 걷는 걸 좋아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에 하나다. 머리 속이 아무 생각없이 평온해진다. 그리고 하늘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물을 보면 그 느낌이 너무나 선명하게 속까지 스며드는 듯 하다. 나는 너무 많은 방어막을 치고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사람들과 불편하게 거리를 둔다.

 

 

구계포 계곡 널따란 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다보니 단풍이 어찌나 고운지 시간이 그대로 멈춰진다면 거기 그대로 누워 한참을 바라보고 싶었다.

 

 

 구계포 계곡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오며 좀 아쉬웠지만 아침부터 목안이 잔뜩 부어 염증이 생긴 상태로 더 무리하면 힘들어질 것 같아 적당히 걸었다 싶어 내려왔다. 같은 장소에서 작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려고 지영이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저기 매달려 있던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년에 내 모자를 쓰고 찍은 지영이 사진과 비교해보니 한 해 사이에 정말 키가 많이 자랐다.

 

내 모습도 어찌 변했는지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작년엔 몸이 더 안좋았는지 내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올해는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차 기다리는 동안 어깨에 힘이 주욱 빠진 모습으로 한장 찍었다. 내년 가을에 사진 찍으면 또 비교해봐야겠다.

 

 2008년 10월 사진

 

올해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랑 비교해보니 작년에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엄청 꼬맹이 같다.

올해는 저 바지 단을 다 따내려서 입혔으니 세월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