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 <2005/05>
금요일 저녁 가방에 대충 아무거나 챙겨넣고 산에 갈 준비도 생각도 없이 나선 걸음에 집에서 그 밤에 갈 수 있는 만큼 멀리 가고 싶었다. 늦은 시각에 출발해서 썩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일단 집을 벗어나니 깨질 듯이 아팠던 머리와 쉽게 소화시키고 삼킬 수 없던 생각들이 일단 보류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안정시키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한 곳은 지리산이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입고 나간 그 차림이며 구두발로 다른 등산코스를 선택할 수도 없었고, 언젠가 성삼재까지 갔다가 노고단에 오르지 못한 기억이 아쉬워 노고단을 찾았다.
아이는 치마를 입고 나는 어줍잖은 나들이 복장으로 산행을 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참 대견(?)했다. 대략 9Km를 걸었다. 이제 막 4월의 막바지 새 잎이 모양을 갖춘 것 같은 산길은 나를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했다. 흐린 하늘 덕분에 갈증없이 걸을 수 있었던 산길의 모든 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돌아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나도 섬진강 줄기 이어진 산 아래를 가만히 응시하다 때가 되면 지는 꽃처럼 사뿐히 내려앉고 싶었다. 어디로든 흩어져 분해되어도 좋을 황홀경에 눈물이 나도록 5월의 노고단은 아름다웠다.
이대로 낙화하는 꽃처럼 저 숲의 융단 위로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다면......
아이는 손에 꼭 쥔 민들레 홀씨를 불고, 나는 소원을 빌었다.
지리산이여, 그대 품안에서 나를 더 자유롭고 평화롭게 해주오.....!
난 그대의 위엄에 첫 눈에 반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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