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무이산 문수암 <2005/06>
토요일 오후 갑자기 인터넷에 연결이 안 되었다. 컴퓨터를 켜놓으면 거의 인터넷에서 살다시피 하는 나로선 대형 사고였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라 어쩔 수가 없는 거다. 속수무책으로 컴을 끄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날은 덥고 집에 있으면 컴퓨터를 못 만져서 병날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어디든 나갔다 와야 했다. 지영이 어린이집에서 점심나절에 돌아온 후 가방 싸서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밖으로 나왔다. 뭔가에 등 떠밀려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성군 무이산 문수암 올라가는 길. 고성에 살 때 종종 가던 문수암엘 갔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사천 중학교 학생들이랑 소풍을 갔던 기억도 있고 워낙 절에 가시는 걸 좋아하시던 어머니랑 자주 찾던 곳이다.
문수암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언덕에 못 보던 건물이 생겼다. 얼마나 오랜만에 왔으면 저걸 이번에 처음 봤을까..... 지영이는 괜히 가보자고 귀찮은 나를 조르고 못 이겨서 또 거길 따라서 들어가야 했다.
문수암에 딸린 전각인데 산꼭대기에 앉은 문수암 부근엔 자리가 없어서 그 자리에 지은 모양이었다. 사진만 찍고 나오려다 약사전이라 약함을 들고 있는 불전 앞에서 고개만 숙여 약식으로 삼배를 올렸다.
"엄마 아픈 데가 빨리 다 낫게 해달라고 지영이도 기도 해봐..." 자신을 좀 더 알뜰하게 돌보고 아픈데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깊이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야외에 조성해 놓은 불상 주변 전각을 둘러보는데 지나오며 야외에 있는 불상을 바라보며 예배할 수 있게 해놓은 실내 법당에 앉아 계시던 노스님이 지팡이를 들고 뒤를 따라오고 계시기에 슬쩍 등 돌려 사진 찍는 척을 했다. 노스님은 지영이를 붙들고 손에 예쁘게 생긴 단주 하나를 쥐어주고 가셨다.
"부처님한테 예쁘게 절하대. 처음이다..." 주로 관광객들이 와서 휙 둘러보고 가는 곳에서 지영이가 서서 고개를 몇 번 숙여 인사한 것이 노스님의 눈에 예뻐 보였던 모양인지 일부러 찾아 나오신 거였다. 그곳에 오기 전까지 찌뿌듯하고 불편했던 심기가 일순간 날아가고 피곤했던 것도 그 순간 잊고 말았다. 나는 참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 불전이 약사전이 아니었다면 구태여 그 거대불상이 모셔진 불전 앞에서 참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내 마음에 절실한 것과 맞닿는 그곳에서 문득 참배를 하게 되었고, 아이는 뜻밖에 자그마한 선물을 받았는데 난 무슨 영험한 약이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의 우울은 그곳에서 그렇게 단숨에 다 녹아버렸다. 산과 하늘, 구름, 꽃, 나비, 바람..... 자연의 오묘한 조화와 맑은 기운들이 내 시름을 씻어준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