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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5>

5월 연휴 첫날

by 자 작 나 무 2025. 5. 3.

2025-05-03

 

연휴 첫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찍 눈 떠서 한참 빈둥거렸다. 그냥 쉬기만 하기엔 아까운 봄날에 비가 내리니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엊그제 통영까지 오는 교통편이 없어서 3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거제로 왔던 딸은 지쳐서 깨지 않는다.

 

어제 오후 퇴근한 뒤에 딸이 있어서 그 집에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짐정리를 하고 나왔다. 혼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정신적인 압박감은 예상보다 컸다. 25년 넘게 밀린 일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온몸을 적시고 가는 듯한 착각에 힘들었다. 알뜰하고 깔끔한 살림살이가 치매 환자에게도 가능하다면 그건 오래 묵은 습관은 잘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아주 오래전에 이 즈음에나 겪을만한 일을 꿈에서 겪고 여동생에게 말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어떤 미래는 정해져 있던 게 아닌가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상하지도 않았던 미래의 어느 날을 아주 오래전, 그 시절에 꿈으로 그려냈다.

 

달라진 것 없지만 달라진 현실, 보이지 않던 삶의 무게가 일부 거둬져서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 갖고 싶은 책이 있는데 짐이 늘어날 게 신경 쓰여서 살 수는 없고, 제대로 볼 시간도 없었으면서 일주일 연장해서 가지고 있었다. 오후에 도서관 가서 반납하고 연휴에 뒤적거릴 책이나 빌려와야겠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가득 든 그림책을 비롯하여 몇 가지 책으로 그간 바쁜 일과에 쫓기며 숨 막히던 생활에서 잠시 다른 세상과 연결하는 시간을 보냈다. 

 

*

직장에서 만난 어떤 인생 선배가 내게 골프를 배우라고 권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보라나 뭐라나. 나는 굳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쌓을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려도 내 뜻과는 다른 조언을 해주신 거다. 그래도 들었으니 생각은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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