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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20>

통영 연화도

by 자 작 나 무 2020. 6. 4.

2018년 7월 초순에 수국이 지기 전에 처음으로 연화도에 다녀왔다. 어떤 드라마 한 장면에 찍힌 연화도 용머리를 보고 꼭 거기 가보고 싶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11시 배편을 생각해냈다. 불쑥 기분대로 나서기로 마음먹었고, 마침 수요일 오전에 온라인 수업을 듣는 딸에게 방을 내주고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이불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마뜩잖아서 어디든 나서고 싶었다.

 

 

 

의자만 있는 객실, 넓은 방으로 된 객실, 조금 작은 방까지 세 가지 종류의 객실이 있고, 여객선 제일 위층에 마음대로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몇 개 있다.

 

 

 

혼자 자주 걸으러 다니는 바닷가 산책길이 보인다. 언덕에 있는 통영 국제음악당에도 코로나 19로 인해 공연을 보러 가지 못 한지 꽤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나선 걸음이라 준비한 것은 커피 한 통에 초콜릿 한 알. 일단 이것 먹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고 음식은 섬에서 사 먹지 않기로 했다.

 

 

 

출항한 지 40분가량 지나니 슬슬 지겨워졌다. 바깥에서 10분 정도만 있으면 연화도에 도착하니 10분은 밖에 서 있었다.

 

주말이었다면 그나마 이 배에 차도 그득 실렸을 것이고 관광객도 더 많았을 텐데 평일이어서 그나마 사람이 적다.

 

 

 

연화도에 승객을 내려준 배는 바로 옆 우도에 들렀다가 10분 거리에 있는 욕지도로 간다.

 

 

 

연화사 일주문을 지나 보덕암이나 출렁다리 방향으로 길이 나뉘어진다.

 

 

 

아직 수국이 피지 않아서 보덕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가보지 않은 출렁다리 쪽으로 가기로 했다.

 

 

 

출렁다리 방향으로 길을 꺾어 올라오니 수국이 몇 송이 피어서 반갑다.

 

 

연화사가 내려다보인다.

 

 

 

연화사 지나서 보덕암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보덕암 방향으로 가실 줄 알았던 스님께서 내 뒤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신다.

 

 

 

이 좁은 길에서 앞서 가기 멋쩍어서 꽃 한 송이 붙들고 한참 사진을 찍다가 몇 걸음 뒤에서 걸었다.

 

 

 

출렁다리까지 2.5km라지만 초행길에 아무도 없는 이런 한적한 곳에 혼자 걷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나란히 걷지 않아도 누군가 앞서 걷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저 멀리 언덕에 보덕암이 보인다. 보덕암에서 보면 이쪽이 연화도 용머리 능선이다.

 

 

 

연화사와 보덕암만 있는가 했더니 여기 길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선원이 자리 잡고 있다. 연화사에서 걸어오신 스님은 빗장을 열고 선원으로 들어가셨다.

 

 

 

 

한참을 혼자 걷다 보니 출렁다리가 멀지 않은 곳에 컨테이너 박스 카페가 하나 있다.

 

 

 

연화도 용머리의 막다른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여기 펜션이 두서너 곳 있다.

 

 

 

전망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저들이 지나간 출렁다리를 건넌 뒤 계속 혼자 걸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사진 한 장씩 남겨둔다. 날이 좀 맑았으면 시야가 깨끗해서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산길 300m는 생각보다 멀다. 덥기도 하고 혼자 걷다 보니 뱀 만날까 봐 그게 제일 무섭다. 저 작은 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그늘이 있으면 앉아서 좀 쉬고 싶었는데 그늘이라곤 없다.

 

 

 

맑은 날 꼭 한 번 더 와야겠다. 뇌에 그동안 덕지덕지 낀 먼지 같은 것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전망대에서 돌아오는 길에 흔들리는 출렁다리며 혼자 더듬더듬 기어오른 길을 되돌아가려니 아득한 기분에 여기 서서 숨 고르기를 했다.

 

마침 급하게 전망대만 찍고 내려가는 사람이 나보다 뒤에 왔다가 금세 내려간다. 혼자 산길 걷는 게 무서워서 가만히 섰다가 뒤따라 나섰다.

 

 

 

내가 온 것과는 다른 경사진 길로 내려간다.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길이다. 

 

 

 

왔던 길을 되짚어 선착장까지 걷는데 하필 한참 더운 시각이라 지친다.

 

 

 

걷지 않다가 오르막 내리막 투성이인 길을 무릎이 팍팍해지도록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물을 조금씩 마시면서 걸어도 땡볕에 탈진할 것 같아 주저앉고 싶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또 걷는다. 비 올까 봐 우산도 들고 왔는데 무겁기만 하다. 꺼내서 양산처럼 쓸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걸었다.

 

 

 

지나온 선원 한쪽 입구인지 출구 쪽에 풀을 베어놓은 자리가 있고 누군가 의자를 하나 갖다 놨다. 이 자리가 마음에 든다. 양쪽으로 바람이 불어와서 가만히 앉아있으니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남은 커피를 꺼내서 마저 마시고 가만히 앉아서 또 숨 고르기를 한다.

 

 

 

 

 

 

학생 6명이 다닌다는 연화분교

 

 

 

선착장에서 가파르게 만든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우도 넘어가는 다릿목에 카페가 하나 있다.

 

 

 

오래 걸어서 기운이 없다. 

 

 

우뭇가사리 넣은 콩국은 별로 즐기지 않지만 시원하게 한 사발 후루룩 마시니 한결 낫다. 손님이 없다. 재난 지원금 카드로 커피까지 한 잔 더 주문해서 마시고 앉아서 쉬었다.

 

12시쯤 섬에 들어와서 3시간 혼자 놀았는데 나가는 배 시간이 5시다. 주말에나 중간에 3시 50분 배가 있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왕복표를 끊어서 삼덕으로 가는 배를 탈 수도 없고 시간은 맞춰야 하니 조금 쉬었다가 우도에 가보기로 했다.

 

 

 

이 작은 섬을 끼고 다리 두 개로 연화도와 우도가 연결되어 있다. 

 

 

다리도 퍽퍽하고 천천히 걸어도 더 멀리 가면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 우도는 눈도장만 찍고 돌아가기로 한다.

 

 

 

마침 목줄을 묶지 않은 개 한 마리가 계단에 서 있어서 내려가지 못하고 바로 돌아섰다.

 

 

 

우도에서 연화도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저 멀리 현실이 아닌 것 같은 희미한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 

 

 

선착장까지 내려가는 계단은 엄청난 급경사다.

 

 

 

도무지 한 걸음에 오르기 힘들던 그 계단에 보조 계단을 덧대어 만들어놨지만 그래도 오르내리기 힘들다. 저 계단이 아마도 지금 내 다리가 제 구실을 못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을 것이다.

 

다음 주쯤 수국 핀 것 보러 연화도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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