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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5>

3. 23

by 자 작 나 무 2025. 3. 23.

2025-03-23

쉬지 않고 달려서 2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고작 30분 줄이겠다고 그 길을 줄곧 달렸더니 엔진에서 전해져 오는 열기가 어찌나 후끈한지 몇 번이나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겠다고 그렇게 달렸더니 수명이 3시간은 단축된 것 같은 기분이다.

 

오후에 한 잔 마신 진한 커피 기운에 가쁘게 펌프질하는 심장을 밀고 또 밀어서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는 숫자까지 속도계가 올라가는 순간도 있었다. 몇 번 오간 그 길에서 오늘은 기어코 내 몸이 분해됐다가 이곳에서 다시 조립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한 달도 채우지 못했는데 마지막 달에나 느껴야할 것 같은 증상이 훅훅 올라온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명이 단축돼서 급 노화하지 싶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고, 미친 듯이 가속페달을 밟고 달리며 축지법이라도 쓴 것처럼 감정의 변화 없이 그 온도로 공간 이동하는 상상을 했다. 정말 눈 몇 번 깜짝한 사이에 와닿은 것 같은데 몸은 시차 적응이 안 된 것처럼 공간 이동의 후유증을 앓는다.

 

어제 마트에서 새로 산 차조를 넣고 아침에 새로 지은 밥을 한 공기 담아서 들고왔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는데 여기에 도착한 뒤에 몸은 이곳에 왔지만 아직 몸의 일부가 길 위에서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고달픈 몸을 달래려고 탄수화물을 들이부었다. 차조밥에 맛이 진하게 든 꽈리고추 무침으로 입안에 매콤 짭짤한 맛으로 정신을 쏙 빼놓고, 고구마 두 개 씻어서 쓱쓱 껍질 벗겨서 썰어서 찬물에 담갔다.

 

도톰하게 썬 고구마를 살짝 익혀서 묽은 반죽 입힌 뒤에 튀겨냈다. 탄수화물 더하기 탄수화물. 드디어 길가에 흘리고 온 것 같은 머리 반쪽이 돌아왔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여서 조금 따뜻할 때 입을 옷가지며 얇은 이불을 챙겨왔는데 이 집에서 어디에 그 물건을 둬야 할지 계산이 되지 않아서 아무 데나 던져놓고 멍하니 앉았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몸이 못 견뎌서 힘들다고 생색을 낸다. 어느날은 길 위에서 원하지 않는 사고를 당해서 처참하게 부서져서 죽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어느 순간 그런 날이 와도 후회하지 않게 온 정성을 다해 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

내 감정의 문을 걸어닫았더니 이젠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므로 겉으로 드러내어서 말하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판단도 하지 않기로 했다.

 

*

토요일 아침, 시래기국에 새우 넣은 부추전을 부치고 참민어 한 마리 구워서 밥상을 차렸다. 지난주에 미리 시래기를 삶아서 된장에 버무려서 냉동실에 넣어뒀더니 멸치 육수만 내니까 간단하게 국 끓이기 좋았다. 나의 금명이 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다. 

 

멀리 내다보려니 목이 아프다. 그냥 오늘만 살자. 더는 생각할 머리도 없고 재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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