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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5>

우황청심원을 먹었다

by 자 작 나 무 2025. 3. 27.

2025-03-27

어제 늦은 밤, 회식에서 돌아왔다. 밤이 깊었고,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그 전날엔 야근을 했고, 어제는 마치 부유하는 듯한 기분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자리마다 다른 목소리들이 흩어졌다. 말들이 부딪치고, 가라앉고, 사라졌다. 내 안에서도 말들이 떠올랐다가 내려앉았다.

 

오늘, 체력이 바닥이 났다. 몸이 무거웠고, 머리가 둔했다. 술기운이 다 빠지지 않은 탓인지, 감정이 덜 걸러진 채로 흘러나왔다. 말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것이 이미 입 밖으로 흘러나왔음을. 며칠 전부터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잘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먼저였다. 그 욕심이 불필요한 말들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여전했다. 책을 가져오지 않은 채 엎드린 아이들, 속삭이다가 이내 큰 소리로 재잘거리는 아이들. 말리지 않았다. 대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했다. 내 말들이 허공에 맴돌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말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어떤 아이들은 내게 와서 칭찬을 했다. 웃으며, 수업이 좋다고 말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에 대한 말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극단적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고마움을 느꼈고, 또 누군가는 나를 불편해했다. 회식 자리에서, 나는 테이블을 고르지 못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굳어진 원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술잔을 받았고, 마셨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공립학교는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지만, 이곳은 달랐다. 견고한 성이었다. 틈이 없었다. 나는 그저 듣고 있다가, 맥주잔을 비우고, 퇴근했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지나친 노력은 오히려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었다. 적당히 하는 것이 어쩌면 최선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날도 있는 것이다.

 

 

*

퇴근 전, 일이 엉켜버렸다. 인성부에서 일이 생겨서 불려 온 학생과 마주 앉아 말을 나누었다. 수업 시간에 부딪혔던 아이였다. 그리고 또 한 번, 내 말을 어딘가로 가져가 비틀어 전한 학생과 대화한 제삼자의 지인과. 한 번 건너간 말들은 제멋대로의 형태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마치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학생의 말 한마디면, 나는 선생이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가 되었다. 감정을 삼키고, 복도를 걸었다. 가만히 걸었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몹시 길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들다고 말했다. 곧 울음이 터졌다. 차 안은 작았고, 내 울음소리는 컸다.

 

가슴을 두드리며 울었다. 차가운 창문 너머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사춘기였다면, 나는 그대로 옥상으로 올라갔을지도 몰랐다. 뛰어내리는 순간, 모든 시간이 지워질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십이었고, 내 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다. 그 생각이 나를 붙들었다.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꾸역꾸역 만들어냈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마음을 가진 채로, 왜 그런 사소한 일에 감정이 걸렸을까. 피곤했다. 몸이, 마음이, 지나온 시간들이. 이틀 내내 긴장 속에 있다가,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감정이 터진 것이었다. 그간 누적된 감정 노동의 결과였다. 그걸, 그럴싸한 책임감으로 견디고 있었다.

 

딸은 내 전화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큰소리로 우는 동안, 딸이 느꼈을 절망과 슬픔을 떠올려보지 않았다. 다만, 그 감정을 어딘가로 흘려보내야만 했다. 침묵 속에서 앓느니,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약국에 가서 우황청심원을 샀다. 따뜻한 욕탕에 몸을 담그기 전에 그걸 한 병 삼키고 이 모든 것이 잠잠해지길 바랐다. 함께 산 멜라토닌을 30분 전에 한 알 삼켰다. 나 이제 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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