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연가를 한 시간쯤 내고 일찍 나왔다. 오후 6시 이후, 대전 중구를 지나던 터널 초입에서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고, 나는 그 사실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충돌은 짧았고, 소리는 날카로웠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늘 무시해 왔던 에어백 점검 경고였다. 몇 번이고 봤지만 지나쳤던 그 신호. 결국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고, 충격은 그대로 내 몸으로 전해졌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밀려온 건 고통도 당황도 아닌 고립감이었다.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 누구와 이 무언의 공포를 나눠야 할지 몰랐다. 한 사람에게 통화가 가능하느냐는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관계란, 사고처럼 어떤 충격 앞에서야 그 본질이 드러난다는 걸.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그 말이 너무 그럴듯해서, 나는 믿었다. 그래서 더 쓰라렸다. 말과 마음 사이의 거리, 그 틈에서 주말 내내 내 감정은 요동쳤다. 이번 사고는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라, 관계의 껍질을 깨뜨리는 내적인 충돌이기도 했다. 감정이 헷갈리게 했던 그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끊기로 했다.
정작 위기 앞에 침묵한 사람이라면, 그 자체로 대답이 된다. 꽃바구니 하나가 있었다. 이미 거의 다 시들고 작은 꽃 몇 송이는 아직도 싱싱해서 버리지 못했다. 그 한두 송이의 생기로 전체를 붙들어두려 했던 나의 미련. 오늘에서야 안다. 그 미련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는 것을. 그 꽃을 이제 버려야겠다. 그것이 슬픔이 아니라 자유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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