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8
2023년 가을, 비 오는 날 불쑥 찾아가서 오랜 침묵을 깼다. 몇 달 뒤면 아주 멀리 이사할 거니까 그래도 마지막으로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야지 생각했다. 그날의 대화는 아주 파격적이었다. 나를 배웅까지 해주셨다. 마지막 남은 기억과 정신이 온전한 순간의 교집합. 다음날 찾아갔을 땐 영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을 끊어냈다.
어제도 그랬다. 막내 동생이 전화할 무렵, 내가 마침 그 동네에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엔 나를 알아보고 기억도 온전해 보였는데, 내가 그 집을 떠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렇게 내 욕을 해서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셨다고 한다. 이제야 알았다고 한다. 내 형제들이 여태 들어온 이야기, 내 이름 뒤에 붙은 치졸한 이야기가 그 증상에서 나온 누명이었단 것을.
아무리 내 입으로 말한들 다들 멀리 떨어져서 살면서 대화가 온전하기 어려웠고, 내 말을 험하게 하는 이는 우리가 가장 믿어야할 대상이었으니 의심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웠으리라. 그래서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입 다물고 조용히 우리만의 삶을 살겠다고 일찍 결심했다. 어떻게든 나를 배제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셨다. 그 상태에서도 얼마나 아들만 귀한지 끝내 그러셨다.
덕분에 딸이랑 둘이서 긴 세월 홀가분하게 살았다. 아주 허전하도록 홀가분하게. 그래도 막내 동생은 말이 통했다. 어렵고 긴 세월 지나서 만나서 오해도 풀었다. 처음으로 막내 동생네 가족사진을 봤다. 조카들이 어쩌면 다 그렇게 예쁜지 마음이 울컥했다. 별일 없이 살았으면 그 아이들 자라는 것도 종종 봤을 텐데.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야 했나.....
돌이킬 수 없는 중증 기억 소실 상태가 되어서야 우리가 가족답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무거운 이야기는 비극과 회복의 이야기가 한몸처럼 펼쳐졌다.
홀로 망망대해를 떠돌던 내 삶이 이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