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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12>

불일암의 가을

by 자 작 나 무 2012. 11. 19.

11월 10일

 

가을 단풍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순천만에 갈대밭도 보고 일몰을 보고 돌아오기로 약속을 했었지만, 날이 흐려서 일몰 감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한 친구 윤하와 함께 맛집도 찾아가는 조건으로 송광사로 향했다. 송광사 아래 길상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하고 사진을 좀 찍고 오는 정도로 주말여행 일정에 합의를 봤다.

 

 

송광사 가는 길에 꼭 들리는 길상식당.  딸이 꼬막 정식 먹고 싶어 했는데 메뉴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더덕 정식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고 왔다. 맛있는 걸 먹을 땐 내 딸 눈에 항상 저런 불빛들이 번쩍이는 것 같다. 지영이는 더덕구이와 된장을 좋아한다. 나물 반찬은 한 가지도 손을 대지 않는다. 전부 내 차지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은 언제든 비를 뿌릴 기세다. 딸 친구가 지영이가 가지고 온 토끼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좋아했다.

 

 


 

이제 친구가 더 좋은지 엄마는 항상 뒷전이다. 뒤에서 슬슬 따라가도 싫진 않다. 함께 나올 수 있는 것에 만족. 송광사 가는 길로 걷다 불일암 가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송광사에 들렀다 나오면 불일암 참배 시간에 맞춰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불일암에 먼저 가기로 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니다. 산길을 걸으며 어디론가 향하는 곳에 대해 인지하고 불일암 뜰을 거닐며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을 잠시 가져보는 것이다.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생전에 좋아하시던 후박나무 옆에 법정 스님의 유골을 모셨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마당에 심어놓은 채소들을 보며 한때 내 욕심에 대해 기억해냈다.

"너 낳기 전엔, 엄마는 어디 조용한 산속에 작은 집 짓고 감자밭 한 뙈기, 채소밭 한 뙈기 일구고 혼자 살 생각도 했었다......."

딸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했는지 그냥 뜬금없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는지 그냥 웃었다. 내 삶에 별다른 애착이 없이 지낼 때는 가족과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용히 혼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놓고 그렇게 소박한 삶을 살아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뜻하지 않았던 길로 들어섰을 뿐.......

  

 


 

겨울을 날 장작 패놓은 것을 보고 내 빈 아궁이에 불이라도 지핀 양 조금은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걸음대로 자신이 밟고 선 자리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했다. 함께이면서도 또한 자신만의 인생을 각자 살아가는 것이다.

 

 



 

 

 






불일암을 내려와 송광사로 향하는 길에 낙엽이 그득한 길을 지나왔다.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간에 함께 길을 걷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한껏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