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꽃가루가 황사 수준으로 날리던 강릉 바닷가는 호흡기 예민한 내겐 대참사였다. 눈 뜨고 바닷가를 거닐며 한동안 못 본 바다를 실컷 보겠다는 결심을 단숨에 꺾어버렸다.
강릉에서 가장 가까운 오대산 국립공원 숲길을 걷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 이름만 보고 갔다가, 꽤 긴 비포장도로를 타고 올라가서 오대산 상원사에 도착했다.
늦은 봄 벚꽃이 핀 강원도 깊은 숲과 불사를 크게 한 산중 사찰에서 즐긴 늦은 초봄. 타이어를 새로 갈아야 할 정도로 작은 차 타이어 홈을 다 닳게 했던 비포장길을 걸어 올라갔더라면 체력이 달려서 그렇게 머무르진 못했을 테니 천천히 걸으며 다 즐기고 싶었던 욕심은 아쉽지만 접어야 했다.
늦은 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비포장길을 달려서 4월 말에 만난 초봄과 늦은 봄이 어우러진 풍경에 한없이 설렜다. 연둣빛 새잎의 싱그러운 감촉과 빛을 그대로 투과하는 듯한 얇은 잎은 해마다 반복하는 새 삶을 시작하는 떨림을 환한 빛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 땅에서 몇 번이나 반복하는 삶의 여정, 해마다 새잎을 올리면서 스러지고 성장하는 삶을 반복하는 그들을 보며 간혹 미리 지친 내 걸음걸이를 바로잡는다. 나도 그들처럼 말없이 내 자리를 지키면서, 바람 따라 흘러 다니며 한 세상 살다 가면 어떨까 싶다. 멀어서 한 번도 다녀가지 못한 산길을 편안하게 걸었다. 누군가 먼저 내 준 길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