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1
눈 내리고 비바람 치는 3월 마지막주는 생전 처음이다. (3월 29일)
저녁 먹고 동네 마트 나갈 때까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원두를 사지 않아서 마시지 않던 커피를 마시고 버텨야할 것 같아서 엊그제 마트에서 원두 한 봉지를 샀다. 집에서 마시려고 했는데 출근 전에 한 잔씩 내려서 마시려고 몇 잔 분량만 갈아서 들고 왔다.
아침에 한 잔 내려서 마시려니 드리퍼가 없다. 거름종이를 철망에 걸쳐놓고 대충 한 잔 내리다보니 얌전하게 내려오는 척하다가 거름망이 홀랑 뒤집히면서 주방을 닦아야할 일이 생겼다. 내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다이소에서 드리퍼 하나를 샀다. 그냥 집에 들어오려니 괜히 아쉬워서 다이소 부근에 있는 대형 마트에 슬리퍼 바람에 그대로 어슬렁거리다가 나왔다.
다이소에서 본 욕실 의자는 꺼내서 앉아보니 영 시원찮아서 그 핑계로 마트에서 욕실 의자를 골랐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세수대야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집었다가 놓았다.
*
지난주 도착한 꽃바구니, 스펀지에 물을 흠뻑 적셔두었건만 오늘따라 기운이 없다. 잎맥이 힘없이 늘어진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원룸으로 가져왔다. 사진 속에서나마 오래 남을 꽃들, 그러나 그 꽃엔 보낸 이의 흔적조차 없다. 한 글자도 없이 온 익명의 마음, 나는 그 마음마저 무심히 흘려보냈음을 이제야 문득 깨닫는다.
며칠 내 책상 위에서 고단한 시간에 잠시 위로가 됐다. 누군가 내가 꽃을 받은 것을 빌미로 말을 걸어줬고, 덕분에 괜히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웃었다. 그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기운 덕분에 내 안에도 봄이 스미고 있었다.
피곤함에 저녁부터 눈꺼풀이 무겁다. 현실은 1차 고사 문제를 내고 밀린 공부를 하고 숙제처럼 쌓인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떠오른 감각 하나. 오래전 달빛 아래 찰랑거리던 감성의 우물,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웅덩이 하나 만들기로 한다. 바짝 마른 마음에 물 한 바가지씩 부어가며, 언젠가는 이 웅덩이가 다시 우물과 맞닿게 될지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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