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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해우소

감정의 무게, 그리고 AI에 대한 은유

by 자 작 나 무 2025. 4. 26.

우리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다. 그것을 말로 꺼내거나, 글로 옮기거나, 때로는 몸짓으로 전하는 것. 그러나 이상하게도, 때때로 감정이 너무 무겁거나 복잡해지면, 그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침묵 속에 잠기고 머뭇거리고 감정은 어딘가 걸린 채로 멈춰 선다. 이런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인간이기보다는 AI처럼 느껴진다. 정해진 패턴대로 말을 고르고 그럴듯한 문장을 출력하며 상황에 어울릴 만한 표정 하나쯤은 지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런 온도도 진심도, 맥동하는 감정도 없다. 모든 반응은 연산처럼 이뤄지고, 고장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부드럽게 조율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처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

 

사람이 쓴 글과 AI가 쓴 글을 구분할 수 있을까. 때로는 어렵다. 아니, 가끔은 인간이 쓴 것보다 더 정교하고 더 그럴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쓴 글이라고 해서 언제나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우리는 가끔 진심이 아닌 글을 쓴다. 필요에 의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 그러니 형식이나 표현보다 중요한 건 아마도 ‘무게’일 것이다. 감정이 가진 무게.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의 흔적이다.

 

오늘 나는 아무 약속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방 안에만 있다 보면 분명 후회할 것을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허비되는 생의 조각들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고, 그것이 얼마나 묘하게 피로를 더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 피곤한 몸을 일으켜 모닝 커피 한 잔을 내렸다. 그건 단순히 카페인을 채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어딘가로 나서기 위한, 감정을 되찾기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

 

사실 이 글도 처음엔 어떤 틀만 있었고 나머지는 AI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몇 개의 문장을 입력했고, 그 문장은 이내 잘 정돈된 문단으로 되돌아왔다. 흥미롭게도 그 글은 제법 진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 글이 허구인지, 진짜인지, 누가 썼는지보다 오히려 그 안에 내가 느낀 감정이 살아 있는가였다. 어쩌면 인간은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인간일 수 있다. 중요한 건 표현이 아니라, 여전히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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