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정 해우소

꿈을 기억하지 않는 시절

by 자 작 나 무 2025. 4. 26.

2025-04-26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는 사실상 감각과 인지가 어긋나는 지점 위에 세워져 있다. 나는 종종 내 몸이 느끼는 어떤 미묘한 기류와 내 머리가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 사이에 작고도 불편한 틈을 느낀다. 마치 잘 맞지 않는 두 조각의 퍼즐을 억지로 끼워 넣는 듯한 감각이다.

꿈이라는 현상도 이와 유사하다. 한때 나는 꿈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이 무의식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좋아했고, 그 속에 숨겨진 어떤 상징들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뇌과학이 이 현상을 단순화해 설명해주는 지금 나는 꿈을 예전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생물학적 부산물이며 어쩌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요즘 나는 꿈을 꾸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꿈을 꾸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꾸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그나마 꿈과 가장 가까운 감각을 느끼는 순간은, 스스로 생각을 흘려보낼 때, 상상이라는 조용한 작업에 잠길 때다. 하지만 그것조차 깨어 있는 의식의 한 갈래이지, 진정한 꿈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꿈을 꾸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꿈을 꾸지 못하도록 설계된 삶을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정확히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의해 의식이 끌려 올라오고, 현실은 단호하게 요구한다 — 깨어나라, 생산하라, 계획대로 움직이라.

그 결과, 우리는 현실을 지나치게 신뢰하게 되었다. 측정할 수 있는 것들만이 존재하는 것이라 믿고, 스스로에게조차 말 걸 여유를 잃어버렸다. 감정은 관리의 대상이 되었고, 상상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일이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상상력은 단순한 유희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벗어나는 통로이며 때론 그 틈 사이로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내가 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어쩌면 내가 나를 향한 대화를 멈췄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지금이 아니라면 안 될 것 같은 여행지, 뜬금없는 직업, 혹은 과거에 미처 하지 못한 말 한마디. 그런 생각들은 실현되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것들이 떠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아직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살아 숨 쉰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꿈을 꾸는 존재라는 조용한 증거다.

 

'감정 해우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4.26  (0) 2025.04.26
내가 원하는 것  (0) 2025.04.26
AI랑 놀기  (0) 2025.04.26
감정의 무게, 그리고 AI에 대한 은유  (0) 2025.04.26
치사한 저녁 - 강제 불우이웃돕기  (0) 202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