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25>/<2025>

음력? 양력?

by 자 작 나 무 2025. 5. 10.

2025-05-10

 

여태 해마다 내 생일은 음력 날짜로 지냈다. 그래서 사월초파일 지나면 곧 내 생일이어서 그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딸이 아무 반응 없이 외출 준비를 하지 않고 누워 있기에 말을 꺼냈더니, "엄마 생일은 다음 주말에 치르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올해는 음력 생일이 양력 생일보다 일주일 빠르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챙겨주시던 생일이 해마다 음력에 맞춰서 그렇게 하는 습관이 들었다. 딸내미 생일도 그렇게 챙겨 왔으나, 세월호 사고 나던 그 해 4월 16일이 생일이 되는 바람에 질색을 하고 앞으론 양력 생일을 챙겨달라고 했다. 해마다 음력과 양력을 대조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나도 양력 생일을 챙겨야 할까. 하던 대로 음력으로 챙겨야 할까. 

 

내 선물 사러 따라가자고 했더니 다음 주말에 따라간다며 뺀다. 그럼, 올해부턴 나도 양력으로 생일 챙기는 것으로 바꿔야겠다. 이런 사소한 것을 바꾸는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언제였는지 한 20년 뒤엔 생각나지 않을 거다. 아니, 당장 내년부터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떤 것이든 지속하게 되는 변화는 시점을 적어두기로 한다.

 

그럴 기운이 나면, 해마다 내 생일 선물은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산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 올해부턴 특별히 더 천천히 늙어가라.

 

 

*

조용히 집안에서 사부작사부작해야 할 잔일거리를 찾아서 한 가지씩 하며 하루를 보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빛이 회색 건물색과 다를 바 없어서 밖으로 나가기 싫다. 마음에 쫓기는 일이 없으니 편안하다. 

 

*

작년에 근무하던 곳에서 알게 된 분들이 종종 생각난다. 보고 싶다. 나를 잘 따르던 그 아이들도 자주 생각난다. 보고 싶다. 올해 그 학교에 가지 않은 게 내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그다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몹시 아쉽다. 그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눈에 밟히고 그리운 건 이번이 처음인가.

 

그만큼 결 고운 아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 도시에 와서 첫정 든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정말 남다른 면모가 깊게 와닿아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자주 그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내년엔 집으로 돌아와서 그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땐 나와 정든 그 아이들이 다 졸업하고 없을 테다. 작년 한철, 몸은 힘들었어도 행복하게 잘 지냈던 모양이다. 이렇게 순하고 보드라운 기억부터 떠오르니 감사하다.

'흐르는 섬 <2025> >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전 없는 삶  (0) 2025.05.15
우연의 조합  (0) 2025.05.11
꿈보다 해몽  (0) 2025.05.10
배설  (0) 2025.05.10
폭우  (0) 202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