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길 옆에 가로수로 선 벚나무에 꽃봉오리가 몽글몽글 귀엽게 맺혔다.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즈음엔 매번 몸도 좀 힘들었고 그에 따른 여러가지 심리적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블로그에 우중충한 글을 기록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을 때까지 침묵하기로 했고, 워낙 블로그를 자주 하던 내게 이 만큼의 공백은 상당히 긴 기간이었다.
그동안 우리집엔 크고 작은 화분이 몇 개씩 들어왔고,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는 동안 별 감각도 없이 받고 무성의한 인사로 떼운 블로그 친구가 선물로 보낸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몇 권을 꺼내어 그나마 뒤적거리기 시작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 책이 도착한지 꽤 된 것 같은데 그간은 책장 한 장 넘기기도 싫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러한 증세가 오래 가서 여러모로 자신이 답답했지만 억지로 자신을 억누르며 남들보기 반듯하고 멀쩡해지기를 강요하기 싫어서 그냥 두었더니 벌써 봄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매화가 피기도 전에 매화마을에 다녀왔고(별 감흥없이 시큰둥한 기분으로.....) 한나네를 동석해서 매화마을에 또 가자는 아이의 성화에 그 동네에 또 갈까 하다가 어느날은 구례 산수유 마을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상한 기운이 그늘처럼 드리우고 있어 입도 떼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엊그제 봄비가 내리던 오후 반찬거리가 떨어져 마트에 갔다가 반찬대신 1980원에 팔리던 허브 화분 몇 개를 사들고 온 이후부터였다. 집에 사두었던 마사토와 배양토를 적절히 배합해 플라스틱 포트에 담긴 허브들을 다른 화분에 옮겨 심고 언젠가 사두었던 해바라기 씨도 심었다.
집 안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싸구려 물건 사들이는데 재미를 붙여서 요즘은 싸구려 옷을 사들이는 중이다. 살이 찐 뒤 입을 옷이 마땅한게 없어 내내 겨울 폴라티를 입고 다녔다. 봄옷이랍시고 얇은 면 티를 사들여 입어보니 살찌니 역시 뭘 입어도 그저 그렇다. 오늘 도착한 새 구두를 신겨 보내려고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게 학원에 문자도 보냈다.
발이 커지니 한 켤레 있던 구두가 작아져서 발이 꼭 낀다는데 그냥 발을 구겨 넣어서 신으라고 그랬더니 딱 맞다며 며칠 신고다니더니 뒤꿈치가 다 까졌다. 엊그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아이 구두가 오늘 도착했는데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예뻤다. 오늘은 새 물건이 들어온다는 단골화원에 한나 엄마랑 구경가기로 했는데 마침 오늘 한나네 가게에도 새 물건 들어오는 날이라 약속이 깨졌다.
여전히 하루 종일 집안에서 궁상을 떠는 평범한 하루가 가고 있다. 얼마전에 사들인 문라이트에 새 잎이 돋고 파랗게 잘 자라고 있는데 그 옆에 앉은 나는 여전히 뭔가 답답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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