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칼호텔에서 올레길 표지를 따라 걷다 보니 작가의 산책길이란 표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싶은 만큼만 걷기로 했다. 조금 가다 보니 주민센터에 열린 화장실이 있어서 아주 적절한 시기에 유용하게 사용했다. 유럽 여행길에선 그런 무료화장실을 만난 적이 없다. 어디든 들어가서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사 먹거나, 거리에 있는 화장실도 돈을 넣어야 사용할 수 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런 종류의 공공재 구축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화요일 낮이라 한산한 거리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이중섭거리라 이름한 곳의 분위기를 돋워주는 조형물 사진도 찍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 앞에서 시선 고정, 잠깐 멈춤, 기웃기웃
그냥 갈 수 없잖아~ 한 장 찍어줘야지.
이중섭이 서귀포로 피난 와서 살던 작은 방이 있는 집
처음엔 멋모르고 이 정도 집이면 살기 괜찮았겠다 생각했다.
마당 좋은 자리에 느긋하게 쉬고 있는 누렁이가 풍류를 아는 듯한 표정으로 그윽하게 세상을 보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도 아랑곳없이 그늘을 즐기고 있다.
카메라에 담긴 집 오른쪽 작은 문 안쪽으로 이중섭이 살았던 방이 있다.
파리 외곽에 있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한 작은 방 생각이 났다. 고호가 권총 사고로 죽기 전에 머물며 약 70일간 70점이나 되는 작품을 완성시켰다던 곳......
이중섭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 1951년에 서귀포로 피난 와서 일본인 부인과 세 살, 다섯 살 된 아들 2명과 함께 이 초가의 작은 방에서 1년 간 피난 생활을 했다 한다. 결국 생활고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인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홀로 남은 이중섭은 부산, 통영 등지로 전전하며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였으리라.
다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참 아까운 예술가 한 사람이 제대로 생을 불태워보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안타까워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 가슴이 저리고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역사와 시대의 흐름이 주는 아픔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불운한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닌 이 땅의 현실이 아직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초가 뒤켠에 제법 큰 목련나무엔 꽃봉오리가 솜털에 싸여 움을 틔우고 있다. 언젠가 이 땅에도 온전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나날이 오기를 바란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삼천리에 가득하길 염원한다.
길가에 있던 공방 두어 곳에 들어가서 구경했다.
비싸고 볼 것 없는 가게는 쓰윽 훑어보고 지나가고
주인이 친절한 가게엔 머무르며 이것저것 구경한다. 그리고 예쁜 팔찌 하나를 샀다. 비수기라 손님이 별로 없는 모양인지 싸게 파신다 했다. 2만 원에 구입한 이 팔찌랑 살짝 비슷한 것이 공항 면세점에선 180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물론 조금 다르지만 내겐 그냥 마음에 드는 팔찌이면 그만이다.
햇살이 좋으니 색이 고운 화분에도 눈길이 머문다. 언젠가 두어 번 갔던 갈치 전문 식당을 찾아가서 점심을 먹고 올레시장을 둘러서 다시 이중섭 거리로 돌아왔다.
올레시장에서 산 오메기떡 봉지를 들고 이중섭 미술관에 가기 위해 이중섭 거리를 다시 걷는다.
지나가다 웃기는 상호를 보고 딸이 깔깔거리길래 한 장 찰칵~ 마침 지나가던 초등학생도 이 가게 이름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은 역시 똥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운 색감에 눈이 절로 간다.
지나던 길에 유리거울 같은 벽이 있는 가게 앞에서 재미 삼아 사진을 찍고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미술관에 들어갔다.
이건 정문 풍경
미술관 내에서 유일하게 기념촬영이 가능한 곳
옥상에 올라가서 서귀포 앞바다를 한 번 내려다 보고
작가가 남긴 작품은 영원하다는 낯선 여행객의 생각 한 가닥이 먼저 떠나신 그분의 마음에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며 기념품으로 그림엽서를 샀다.
미술관 앞 작은 공원에 드는 겨울 볕이 따사롭다.
그날은 유난히 볕이 좋았다.
우리가 본 이중섭 거리는 한 작가가 잠시 머물다 간 흔적으로 후대의 사람들이 덩달아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예술가의 삶은 여느 위대하다는 위인들 못지않게 아름답고 가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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