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5
이 코스엔 아무도 오지 않아서 딸과 단둘이 걸었다. 딸이 만족할 만한 코스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코스도 있어서 에코랜드에 가면 그럭저럭 같이 놀만 하다.
둔해지고 느슨해진 내 눈처럼 카메라를 들고도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 사진 찍는 게 예전 같지 않다.
이삭여뀌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서 유난히 빛나던 이 식물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요리보고 조리 보고 하던 중에 숲의 정령이 나타나서 아무 말없이 이름만 알려주고 갔다.
"이.삭.여.뀌"
꽤 긴 산책 코스였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둘이 한적함 그 자체를 즐기며 한낮의 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견딜만한 나무 그늘에서 나는 마냥 신나서 룰루랄라 하다가 예쁜 식물을 보면 한없이 눈으로 어루만지고, 예쁘다 멋있다고 칭찬도 마구 쏟아낸다. 오종종한 이삭여뀌를 더 자세히 보겠다고 쪼그리고 앉아서 눈을 대고 있는데 인적도 없던 산책길에 누군가 홀연 나타나서 그 순간 식물 이름만 속삭여주고 간다.
너무나 놀란 딸이 어떻게 그 순간에 나타나서 내가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식물 이름을 알려주고 갈 수 있느냐고 신기해한다. 그러더니 사람이 아니라 아마도 숲의 정령일거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도 없던 숲에서 그렇게 절묘한 순간에 그 곁을 스치며 이삭여뀌라는 단어만 읊조려주고 갈 수 있느냐고.
이곳에서 놀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달달해서 여기 또 오고 싶었다는 딸과 함께 천천히 거닐며 하루 잘 놀았다. 이렇게 한적하고 사람 없는 제주는 처음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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