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3
어제는 아침에 나서는 길에도 눈이 내렸다. 눈 쌓인 산과 들 사이를 달리는 동안 우리가 살던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겨온 사실을 실감했다. 이제 1년이 지났고, 우리 집을 중심으로 있는 대형 마트에 내비게이션의 안내 없이도 다녀올 정도의 길눈은 진즉에 익혔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거기서 거기라는데 사람을 즐겨 만나거나 교류하는 일 없이 사는 내게 이곳은 딸이 아니면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는 곳이다. 앞으로도 크게 다를 바 없겠다. 내 습성이 사람 쫓아다니지 않으니 나를 찾지 않으면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정말 조용히 지낸다.
두 봉지 분량의 콩나물을 씻어서 앉히고 식혜 앉히려고 새로 산 찹쌀을 헐어서 씻는데 문득 쌀밥 먹으러 그 동네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던 게 떠올랐다. 그간 눈이 자주 내리고 추워서 더 북쪽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게 내 작은 차로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생각을 접었다.
딸이 식혜를 좋아해서 최근에 식혜를 서너 번 만들었다. 이제 한 컵 정도 남아서 새 식혜를 만들려고 딸이 외출한 사이에 엿기름 넣고 밥을 삭히는 중이다.
내일은 고향에 있는 곳에 면접 보러 가기로 해서 생각이 많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사립학교여서 신경 쓰이기도 했고, 이곳에 이사했으면 이 근방에 있는 소도시를 위주로 직장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거기에 지원서를 쓰지 않고 계속 망설였다. 그런데 어제 다른 동네에 가서 면접에 떨어지고 보니 더 망설이면 그 자리도 없어질 것 같아서 오늘 급히 지원서를 넣었다.
어제 새로 지원한 충남 **군은 내일 서류전형 결과가 나온다. 기다렸다가 그곳에 면접에 떨어지면 지원할까 하고 계속 미루다가 어제저녁 내내 그곳에서 원하는 형식대로 서류를 작성하느라고 시간을 꽤 보냈다. 덕분에 대충 써서 내던 자기소개서를 꽤 규모 있게 쓸 수 있게 됐다.
합격하면 그 동네에 방을 구하고 고향에서 다시 1년 살이를 해야 한다. 바로 계약하자고 할지 조금 기다리라고 할지 알 수가 없다. 월요일에 면접 예정인 학교에서 오라고 하면 어쩌나 고민이다. 떡 두 개를 손에 쥐고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지만, 둘 다 집을 떠나서 새로 방을 구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한 곳은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니까 주말엔 언제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한 곳은 고향이어서 익숙한 동네지만 집이 멀어서 한 달에 한 번이나 다녀갈 수 있을까 싶다. 직통 교통편도 없으니 운전해서 왕복 예닐곱 시간은 족히 달려야 한다.
둘 중 어디든 오라고 하면 감사해야할 상황이지만, 먼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어려움이 있고, 연고 없는 낯선 시골에서 혼자 살면서 직장 생활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 선택지가 아예 없어지는 순간이 아니니까 아직은 이런 상황을 즐겨야 할 것 같다.
'흐르는 섬 <2025> >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프로필 사진 놀이 (0) | 2025.02.13 |
---|---|
또.... (0) | 2025.02.12 |
허리띠 졸라매기 (0) | 2025.02.09 |
선물받은 차 (0) | 2025.02.09 |
점검 (0)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