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의 한복판에는 ‘감정’이라는 고장 난 나침반이 있다. 감정은 대개 늦게 도착하거나 너무 일찍 와버린다. 그 시점은 언제나 엇박자다. 예컨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곁에 있을 때가 아니라 이미 떠난 뒤에야 밀려온다. 그 감정의 시차는 우리를 우습게 만든다. 이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정서적 파동 속에서 우리는 울거나 참거나 외면하는 식으로 감정을 감당해야 한다.
감정은 인간 안에 내재된 가장 위대한 혼란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받은 사람을 오히려 더 붙잡는다. 분노는 가장 친절한 이에게 향하고, 무관심은 간절히 사랑을 원하는 대상에게 흘러간다. 감정은 불합리하며, 때로는 심술궂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감정은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고, 판단보다 더 깊이 박힌다.
우리는 종종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의도는 감정 앞에서 무력해진다. 감정은 우리의 계획을 비웃고, 우리의 합리적 선택을 무색하게 만든다. 감정이 없었다면 삶은 덜 복잡했겠지만, 아마도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은 훨씬 약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살아 있다는 증거로 작동한다.
때때로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 투명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없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며 그것은 축복이자 형벌이다.
삶은 감정을 정리하려는 시도와 감정에 휩쓸리는 경험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체면을 유지하려 애쓰며, 때로는 고요한 얼굴로 속을 뒤집는다. 불합리한 감정이 우리를 부수기도 하고, 부서진 조각들 위에서 다시 자신을 재건하게도 만든다.
감정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우리는 진실로 인간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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