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7일
간밤에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먼 길을 여기 저기 들렀다 오신 손님들의 여독을 생각하여 해장국처럼 시래기국밥을 사먹었다. 생선을 삶아 갈아서 추어탕처럼 끓인 국이다.
충무김밥을 싸들고 욕지도행 카페리호를 타러 삼덕항으로 향했다. 통영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연화도를 거쳐서 가기때문에 완행인 셈이라 시간이 더 소요된다. 일행들이 싼판에서 맑은 물 안으로 노니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는데 선재님만 저 다리가 무서워서 건너오지를 못하셨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내가 얼른 가서 손목을 잡고 다리를 건너드렸다. 나무 판 사이로 바닷물이 보이면 아찔한데 하필 거기부터 본 다음이라 겁이 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건너오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시던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지영이는 왕이모님들 사이에서 무슨 재미를 붙였는지 아주 잘 놀았다.
삼덕항을 빠져나오며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는 흰 물줄기를 보면서 잠시나마 떠날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짜릿한 쾌감도 느낀다. 한동안 말없이 흰 포말을 보며 온갖 생각들이 이어지다 마침내 떠나온 자리에 흔적없이 제 빛을 찾은 바닷물처럼 나도 여행지의 바람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욕지도로 향하는 선상에서 축배를 왼쪽부터 선재님 친구분, 선재님, 나. 선재님과 나는 띠동갑인데 함께 다니는 동안 친구냐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선재님은 상대적으로 워낙 동안이시니 내가 화낼 일은 아니다. 정말 마음도 모습도 함께 고운 분이어서 질투도 나지 않았다. 참 사람 마음이란 간사하면서도 묘한 것이다.
가을바다는 푸른 하늘과 천생연분!
점심으로 사온 충무 김밥을 풀어놓고 욕지도 새천년 공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한 상은 햇살과 바람과 하늘,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성찬 중에 성찬이었다.
여름에 욕지에 왔을 때 못보고 간 삼여를 찾았다.
삼여 전망대에서 조금 아래 쪽에서 삼여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또 있었다. 거기로 향하는 걸음에 지영이는 어찌나 신이 났는지 날아 다니고 있다.
그림자 따로 몸 따로~ 아이의 마음도 저렇게 날아오른 하루였을 것이다.
From a distance - Bette Midler
새 에덴동산 최숙자, 윤지영 모녀가 함께 손수 지은 집 안에 하나 둘씩 정성스레 만든 것들 모두 그들의 작품이며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에 이어 두번째 방문이었지만 워낙 방문객이 많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 꼬맹이 때문에 기억을 하고 계셨다.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은 딸 지영씨와 세속의 것들을 등지고 남녘의 작은 섬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살게 된 그들의 삶을 보면 모정의 깊이를 다시금 헤아려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저렇게 채취한 돌을 망치로 잘게 부수어 가루처럼 만들어 시멘트를 약간 섞은 후 모양을 만들어가며 집을 지었다 한다. 이런 길고 지루할 수도 있는 작업이 그들 인생에 막연한 목표가 되어 9 년이란 세월을 함께 버티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 해본다.
통영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따뜻한 차 한 모금씩 속으로 들이키며 섬을 떠나오는 마음을 가지런히 추스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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