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도 가는 배는 통영에도 있다. 행정구역상 통영이지만 거제 바다와 인접한 곳에 자리한 섬이라 배를 오래 타지 않으려면 거제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오랜만에 관광버스를 타고 많은 사람과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난다. 갑자기 추워져서 옷을 한 겹 더 입어도 바닷바람은 매섭다. 그래도 처음 가보는 곳에 가는 것은 신난다.
거제 대포항에 우리를 섬으로 데려다줄 배가 기다리고 있다.
출항하기도 전에 너도나도 2층으로 올라와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혹하느라 바쁘다.
출항한 지 20여 분 만에 장사도에 도착했다. 긴 뱀 모양의 섬이란 뜻으로 장사도.
단체 여행이라 나름의 여행 방식대로 천천히 보고 싶은 것 다 보는 것은 힘들고
일단 눈에 들어오는 대로 셔터를 좀 눌러주는 정도
아기 동백이 참 예쁘게 피어있다. 겨울이라 잎도 다 지고 앙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바람만 차지 않으면 겨울이란 사실도 잊을 뻔했다.
로즈마리도 꽃을 많이 피워서 눈길을 끈다.
일행들이 빠른 속도로 그냥 가버린다.
장사도 여행의 묘미는 꼭 섬에 있는 꽃과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섬에서 바라다 볼 수 있는 작은 섬과 바다, 하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날이 흐려서 오후의 바다는 이런 빛이다. 하늘과 바다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어도 이렇게 닮아있다. 서로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고 열심히 쫓아갔지만 정말 빠른 속도로 많은 일행이 이동해버리고 어쩌다 보니 앞서가던 이 두 분과 긴 구간을 동행하게 됐다. 그 전엔 복도에서 오가며 눈인사만 나누던 분들인데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은근 친화력 짱~
섬여행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가 섬에 도착해서 2시간 이상 체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이미 섬에 여러 번 와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체 여행이라 수학여행처럼 그냥 눈도장만 찍고 지나가 버린다.
나는 이미 다른 곳을 점령한 겨울이란 때에 이 푸른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진 작은 숲에도 감동하여 한참 머무르고 싶은데 다들 기념사진만 찍고 지나간다. 나도 쫓아가야 뒤처지지 않을 터라 열심히 쫓아갔다.
수국 필 때 오면 참 예쁘겠다. 누군가 그리워진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더 아름다울 것 같은 길이다.
차가운 바다 건너에 또 다른 섬이 있다. 우리도 다들 저 섬처럼 따로 또 같이 차가운 인생이란 바다에 오뚝하니 앉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알고 보면 다들 저 바닷물 속으론 이어진 땅이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동질감에 어우러질 마음을 낼 수 있을지도......
이 묘한 조각상 앞에서 왜 이게 여기 있는지 알아낼 여유도 없이 일행들이 쌩쌩 지나가 버린다.
'섬 집 아기' 노래가 스피커로 나온다. 어릴 때 자장가 삼아 그 노래만 불러주면 슬픈 얼굴로 잠들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던 내 어린 딸이 생각난다. 뭘 안다고 그 노래를 들으면 젖먹이가 슬픈 얼굴로 나를 쳐다봐서 내가 노래를 너무 못 불러서 그런가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참 슬픈 노래다. 내가 그렇게 가사 전달력이 훌륭했단 말인가? ㅎㅎ
옻칠 공예품 전시관에서 작품을 구경했다.
바람 따라 구름이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면서 하늘빛이 시시각각 변하고 바다도 함께 변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대로 나에겐 노래 선율이 되고 교향곡이 되어 온몸으로 울려오는 것 같다. 시각적인 요소들이 내게 와닿을 때의 감동은 공감각적으로 전환되어 느껴진다. 그래서 그 감동이 더 큰 울림으로 간직되고 각인되는 것 같다.
혼자 걸어도 좋은 길, 동백이 흐드러지게 필 2월에 딸이랑 함께 와서 이 길을 걷고 싶다.
아니면 어딘가 있을 그대와......
휴게실에서 한 개 2,000원에 파는 어묵을 먹었다. 내 돈 내고 사 먹기엔 비싼 어묵이라 피해갈까 했는데 함께 가던 어르신들께서 계산해주신다. 교장샘 덕분에 맛있는 어묵을 먹고 따뜻한 국물도 마시고 좀 여유가 생겼다.
앞서간 많은 이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카페에 쫓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다들 거기 앉아서 따뜻한 걸 마시고 있다. 나도 커피 한 잔. 항상 다정한 언니가 나 예뻐서 사준다고 한 잔 사주셨다. 빈말이라도 얼마나 기분 좋은 말인지 가격대비 정말 맛이 별로인 저 커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잘 마셨다.
이제 곧 돌아갈 배가 뜰 시간이다. 혼자 남아서 하룻밤 묵고 가고 싶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또 쫓아 내려가야 하니 아쉽다.
저녁은 몽돌해변 앞 횟집에서......
관리자께서 선물로 준비하신 발레타인 21년산을 한 잔씩 받았다. 못 마시는 나도 일단 기회가 생겼을 때 맛봐야 한다고 받아서 두 모금 마셨는데 무섭게 취한다.
이후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나지만 왜 그렇게 말을 많이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참은 수다 다 떠느라 목이 쉬었다.
중간중간 자체성형셀카앱 Ulike로 같이 사진을 찍은 분들이 그 앱에 반해서 내 폰으로 너도 나도 셀카를 찍으셨다. 집에 와서 카톡으로 사진을 왕창 전송해주고 졸지에 그 셀카 앱 전도사가 되었다.
다들 사기앱이라고 박장대소하면서도 자기 얼굴 예쁘게 나오는 그 앱을 무척 좋아했다.
딸 데리고 조만간에 더 추워지기 전에 여기 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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