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멋내기 맛내기

엄마 노릇

by 자 작 나 무 2005. 6. 28.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아이를 씻기느라 벗겨놓으면 앙상하게 마른 것이 어디 난민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얼굴만 커다란 아이를 튼튼해 보인다고 말하던 해인이 엄마도 지난겨울 목욕탕에 함께 가선 아이가 너무 말라서 씻겨주려니 목이 메더란 말을 해서 나도 내내 마음이 쓰였다.

 

 

그 사이 음식을 먹는 양도 많아졌고 가리던 음식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말랐다는 생각은 안들 정도로 살이 조금 붙었다. 굳이 퉁퉁하게 살찌울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 아이는 깡말랐는데 어미만 뒤룩뒤룩 살찐 건 아무래도 맘에 안 드는 그림이다.
 
콩밥 먹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서 콩 한 그릇 사들고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에 구워 먹는 떡이 맛있더라는 말이 생각나서 이미 순대와 찐빵을 사고도 떡을 샀다. 그만큼 아이가 먹는 것에 유난히 신경이 쓰인다.
 
 
놀러는 잘 데리고 다니지만, 특별히 잘 먹이는 것은 없어서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가리는 것이 많다.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감자를 먹지 않는다. 카레에 들어갔을 때만 어쩔 수 없이 먹는데 감자를 먹이기 위해 매번 카레를 만들 수는 없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달콤한 감자조림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다.
 
지난주에 다시마 육수까지 만들어 그 육수에 간장과 맛술을 넣어 조린 감자조림이 내 입에는 상당히 맛있었는데 아예 입을 댈 생각조차 않는 게 아닌가. 하나만 맛보면 몇 개 먹을 것 같아 하나만 먹어보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는데 입을 열지 않다가 겨우 한쪽을 집어 먹었다.
 
그리곤 그날 입에 맞는 다른 반찬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다음엔 고집대로 감자를 먹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감자 반찬을 해서 아이에게 먹이겠다는 생각은 포기하고 잔뜩 사놓은 감자를 쪄서 혼자 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감자조림을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너 감자 안 먹잖아..."
"전에 그 감자 조림 있잖아..... 그거 맛있어...... 또 먹고 싶어."
 
앙큼한 것이 맛있었는데도 안 먹겠다고 버티던 것이 미안해서 젓가락질을 안 한 것이었다. 비오는 날은 누구나 더러 입이 궁금하니 평소에 안 먹던 음식도 당기게 마련인데 오늘은 그렇게 싫다던 감자가 먹고 싶어졌다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아침부터 감자를 열 개쯤 깎았다. 서너 개는 카레 만드는데 넣고 나머지는 조림을 하려고 썰어놓았다. 좀 전에 우려놓은 다시마 육수를 넣고 감자조림을 만들 참이다. 다시마 육수는 조금만 쓰기 위해 한 번 만드는 것이 번거로워서 한 번 만들면 그 육수를 활용할 수 있는 요리를 몇 가지는 해야 덜 아깝다.
 
낮은 불에 은근히 우려내느라 부엌이 열기로 그득해지는데 굳이 다시마 국물 만들지 않고 맹물 붓고 조려도 맛에 별 차이가 없을 터라고 생각해버리면 조리가 간단해지고 맛도 더 간결해진다.
 
그래도 남는 게 시간뿐인데 좀 더우면 어떤가. 칼슘 덩어리라는 다시마 국물을 만들어 요리하는 데 쓰면 영양도 맛도 훨씬 좋아진다. 오늘은 몇 컵 정도 만들어진 다시마 육수로 세 가지 요리를 할 참이다. 감자조림, 두부조림, 순두부찌개.
 
 
카레라이스를 한 그릇 그득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온다. 곧 치과에 또 가봐야 하니 잠을 잘 수도 없고 커피나 한잔 마시고 졸음을 쫓아봐야겠다.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 가족은 이 빗길을 뚫고도 먹이를 물고 와서 새끼들의 배를 채워주느라 애처로운 날갯짓을 반복하고 있다.
 
 
천적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둥지에 똘망한 새끼 제비들이 입을 좍좍 벌리고 기다리는데 빗길이 무어 무섭겠냐는 듯 동물들도 강한 모성본능을 과시하는 비 오는 오후다.
 
 
화엄사 입구 지리산 대통밥

'멋내기 맛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고기 생강구이  (0) 2005.07.08
조개 된장국  (0) 2005.07.06
닭가슴살 구이  (0) 2005.07.05
오늘의 보양식  (0) 2005.06.17
스트레스 해소용 웰빙 부침개  (0) 200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