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2
이성에 대한 내 취향은 꽤 오래 한 방향을 향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조용히 쌓여 있는 지적인 결을 지닌 사람.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에도 생각의 깊이와 폭이 함께 느껴지는 사람. 지식의 양만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태도까지 단단한 사람.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말이 이어지고, 생각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생각까지 끌어올린다. 나는 아마 그런 흐름 속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내게는 작은 기쁨처럼 느껴진다.
이런 바람이 욕심이라는 것도 물론 안다. 사람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어떤 깊이는 끝내 닿지 않는 채로 남기도 하니까.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아직 사람을 향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시원하게 빠진 눈매보다 지나치게 부리부리한 큰 눈은 어쩐지 경계 없이 들이닥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경계심이 반응한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속도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상대의 눈을 본다. 그 순간에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에 기록해 두는 듯한 느낌만 남는다.
그리고 혼자 남는 시간이 오면 그 기억들이 조용히 정리된다. 마치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늦게야 제자리를 찾아 앉는 것처럼. 처음 사람을 만날 때의 나는, 판단을 미루는 쪽에 가깝다. 좋고 싫음을 급하게 정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는 쪽에 머문다.
그래서인지 상대의 얼굴이 익숙해지고 대화가 자연스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내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그 감정은 즉각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어느 날 문득 정리된 문장처럼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는 나도 조금 놀란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나 하고.
특별히 애써 고민한 적도 없는데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듯 도착한 판단. 나는 아마 사람을 느리게 이해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